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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5 20:10 수정 : 2015.02.26 15:09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한 독일 방송사 사이트에서 세계 문맹률 기사를 보다 뿔이 났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눈 뒤 색깔별로 문맹률을 표시했는데 포르투갈, 그리스 등은 선진국으로 분류된 반면 한국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 친구한테 하소연했다. “여기 사람들 머릿속 선진국이란 건 유럽과 북미, 일본으로 딱 정해졌나봐. 거의 식민지 약탈 나라들이잖아.” 게거품 물었다. 고자질하기 잘했다. 이란 친구가 얼씨구 북장구 쳐준다. “맞아, 지금 한국이 포르투갈, 그리스보다 잘살지 않아? 두 나라 다 돈 꾸기 바쁜데 한국은 핸드폰도 많이 팔고 잘나가잖아.” 그 말 듣고 나서야 꽁했던 게 풀렸다. 그리고 잠시 뒤 섬뜩했다. 나는 왜 이런 인간이 됐을까? 내가 화난 까닭은 선진국 대 개발도상국 분류 자체 탓이 아니었다. 왜 한국은 선진국에 안 끼워 주느냐는 거였다.

“한국에도 겨울이 있어요?” 또 시작이다. 한두번 들어본 질문이 아니다. 시간제로 일하는 분식점에서 김밥과 씨름하고 있는데 문 열자마자 50~60대로 보이는 독일인이 들어와 주문을 넣었다. 만두가 익는 사이 멀뚱하게 서 있기 어색해 묻는 거다. 주인아줌마가 한국 겨울도 독일만큼 춥다 했더니 눈도 내리느냐고 한다. 김밥 말던 양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독일인이 한술 더 뜬다. “한국도 프랑스 식민지였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 머릿속 지도 속에 한국은 남아시아 어디쯤에 있었다. 그 독일인이 순전히 궁금해서거나 관심을 보이려 묻는 줄 알면서도 나는 속이 부글거렸다. 내가 꽁했던 까닭은 그가 한국을 몰라서만은 아니었다. 한국이 남아시아와 엮이는 게 싫어서였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인간이 됐을까?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기다리는데 구석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니하오마”라고 인사 건넸다. 그 가게에 동양인은 나 하나였으니 그 인사가 향하는 방향은 명확했지만 나는 아이스크림 받고 돈을 내는 데 걸린 5분 남짓 동안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 중년 남자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후에 그때 놀리는 것 같아 기분 나빴다 투덜대니 한 외국인 친구는 “그냥 말 건 거일 수 있는데 왜 기분 나빠”라고 되물었다. 그래, 나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게 싫었던 거다.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을까?

머리로 나는 내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며 배경 상관없이 평등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인간이라 믿었다. 그런데 내 감정이 이성이 서둘러 옷 입혀 치부를 가려주기 전에 불뚝 맨몸으로 튀어나와 실상 내 생각의 ‘꼬라지’가 어떤지 드러내버린다. 나는 사람을 국적에 따라 남몰래 줄 세우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줄 세우기의 기준은 돈이었다. 인종주의자의 변종 ‘금종주의자’쯤 되겠다. 변명해본다. 그 기준 틀린 줄 잘 안다. 내가 이렇게 되고 싶어 된 건 아니다. 대놓고 사람 차별하지 않을 정도의 제정신은 있다. 그럼에도 그 괴상한 줄 세우기는 내 속에 스며들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 저항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스스로 동의하지 않고 혐오마저 하는 기준에 따라 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나 보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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