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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1 19:40 수정 : 2015.03.12 10:08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금발의 치즈라면 언니가 모퉁이를 돌고 있다. 보자마자 냄비에 물을 부었다. 동료까지 데려와 떡라면도 시킨다. ‘오늘의 요리’ 아저씨는 또 한발 늦었다. 오후 한 시 반이면 5유로짜리 오늘의 요리는 동나기 일쑤인데 이 꺽다리 남자는 꼭 그 시간에 와 어깨 처져 돌아간다. 독일 분식점 알바 석달째, 단골 입맛도 슬슬 꿰게 됐다.

일이 손에 붙는 사이 머리는 8.5유로에 저당 잡혔다. 최저임금이다. 라면을 끓여도 김밥을 말아도 퇴근해 밥 먹어도 오매불망 한 생각뿐이다. 지난한 논쟁 끝에 올해 1월 겨우 시행에 들어갔다는데 석달째 접어들도록 내 임금은 7유로 동결이었다. 매일 자기 전에 결의를 다졌다. 내일은 꼭! 그러다 미소 띤 주인 얼굴 보면 또 그 말이 꽁무니를 뺐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그 회오리 감자를 먹지 말걸 그랬다. 주인아줌마가 크리스마스 장터에서 꼬치에 돌돌 말아 튀긴 감자를 사다 줬을 때는 회오리 감동을 먹었더랬다. 이제 최저임금 요구하려 하니 회오리 감자가 바짓가랑이를 감았다. 같이 일하는 알바 청년과 동맹을 도모해보려 해도 그도 그동안 먹은 게 걸리나 보다. 주방에 둘만 있을 때 은근슬쩍 떠보니 독일인 피자집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1월부터 임금 올랐다며 조금 삐죽였다. ‘옳지, 옳지’ 내심 부추기는데 그는 곧 여기는 점심도 주고 음료수도 마실 수 있지만 독일인이 주인인 곳에선 알바에게도 칼같이 돈 받는다며 눈을 껌벅였다. 밥 고봉에 반찬이며 김치도 맘껏 먹게 해주니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그 심정이 내 심정이다.

‘라면에 환장했냐!’ 소리치고 싶을 만큼 손님이 몰린 날, 드디어 청년이 떨치고 일어서는 듯했다. “장사 잘되면 임금 올려주신다고 했잖아요.” 설거지하던 나는 굿 보고 떡 먹는 기대에 꼭 다문 입꼬리가 기어코 올라가고 말았다. “장사가 꾸준히 잘돼야 올려주지.” ‘옳지, 옳지’ 했건만, 청년은 또 회오리 감자의 추억에 빠져버렸다. 그 ‘꾸준히’가 뭘 말하는지 묻지도 않고 답한다. “네.”

한 시간에 1.5유로(약 1800원) 차이다. 두 시간 모아야 커피 한 잔 값이다. 거기에 집착하는 까닭은 돈만은 아니었다.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대가, 그 최소한의 예의도 보장받지 못하는 내 노동이 서글퍼서였다. 내 노동이 곧 나이기 때문이었다.

속앓이는 독일인도 마찬가지였다. 기상천외한 조삼모사가 난무한다. 한 토론프로그램에 나선 34살 무스는 최저임금이 도입된 뒤 서류상 8.5유로를 받는데 사장이 시간당 50센트씩 ‘실비’ 명목으로 떼어간단다. 무스가 물 마신 값이다. 개인 물병 가지고 다니겠다니 그래도 실비는 빠질 거라 으름장 놓았다. 도축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갑자기 칼 비용을 물리기 시작했다. 11년간 같은 구역에 신문 돌려온 슐림스는 이제까지 94분 들었던 양을 52분 만에 처리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불가능하다 했더니 해고됐다. 토론에서는 최저임금 도입이 현실적이었는지, 중소사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갑론을박이 계속됐다. 슈테판 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풀타임으로 일해도 한달 ‘세전’ 수입이 1400유로가 안 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인 겁니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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