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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5 20:17 수정 : 2015.03.26 10:38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영화관에 가려 해도 갑갑하다. 보통 다 더빙이다. 배한성 목소리를 들으면 성룡이 떠오르는 것처럼 배우별로 목소리도 정해져 있다. 남 먹는 거 웃는 거 구경처럼 청승맞은 것도 없다. 돈과 말이 옥죄는 내게 숨통은 춤이다. 싸다. 기본 안주가 없다. 게다가 중년 패션테러리스트이자 무정형 춤사위 바람인형인 내가 출입해도 물 관리 당하거나 존재만으로 죄지은 기분이 안 들어도 된다.

카니발의 마지막이자 절정인 2월 둘째 주 ‘로젠몬타크’, 독일 본 시내 한 술집에선 의자를 다 빼고 파티가 벌어졌다. 입장료 10유로(1만2000원) 내면 맥주 한잔은 공짜다. 목 타면 한잔에 2유로씩 추가로 내면 된다. 퇴장 시간은 체력이 정한다. 코앞에선 백설공주가 춤으로 추정되는 몸놀림을 선보였다. 턱에 숭숭 자란 털 끝에 땀방울이 맺힌 앙증맞은 근육질 공주다. 밤 10시가 지나가니 꾸역꾸역 천사며 물개 따위가 술집에 차 들었다. 공주가 뿜어내는 날숨이 곧장 내 들숨으로 꽂혔다. 아무리 밀착해도 피차 로맨스 따위는 꿈꾸지 못할 몰골의 남남인 공주와 피에로인 나는 연필 한 다스처럼 묶여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했다. 팔다리 흔들 공간도 부족했다. 이 와중에 떼창이 고막을 두드려댔다. 이 지역 사투리 밴드들의 노래다. 동네 꼬마들부터 할아버지까지 동세대로 엮어버리는 마력의 가락이다. 이 가운데 심히 안쓰러웠던 것은 스폰지밥 분장을 한 한 떼의 젊은이들이었다. 그 젊은이들이 숨 쉴 때마다 스폰지밥 코 쪽으로 수중기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이곳에서 시선을 강탈하는 것은 돈도 지위도 미모도 춤 솜씨도 젊음도 아니다. 숭고한 ‘똘끼’다.

은행원 토마스(35)가 속한 직장인 밴드 ‘오버드라이브 11’의 공연이 한창이던 한 동네 술집에서 나는 늘어진 파란 추리닝이 문화를 초월한 공통의 정서를 자극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그룹의 멤버인 토마스와 동네 친구인 단발의 한스(41)와 이마누엘(42)은 추리닝 패션으로 그들 음악의 지향점이 잉여 미학이란 점을 드러냈다. 출렁이는 나잇살이야말로 이들의 예술을 완성한 화룡점정이었다. ‘빨간 풍선 99개’ 따위 추억의 로큰롤을 연주하는데 내일모레면 은퇴하는 하인스(62)의 허리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인류 공통의 춤사위를 낳았다. 관광버스 춤이다. 우리 할머니가 서양 남정네의 몸에 빙의된 듯했다. 그 춤에 자극받은 한스는 등을 바닥에 대고 한 바퀴 도는 브레이크댄스로 추정되는 행위예술을 펼쳤는데 다시 일어나는 데 꽤 걸렸다. 그 어수선했던 야성의 무대 퍼포먼스에 내 앞에 선 은발의 남녀는 헤드뱅잉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들의 티셔츠 등판에 쓰인 ‘핑크 플로이드 포에버’ 글씨가 조명에 반짝였다.

한 공간에서 춤을 춰도 굳이 같은 음악에 맞출 필요는 없다. ‘사일런트 파티’는 조용하다. 6유로를 내니 헤드폰과 맥주를 줬다. 헤드폰을 쓴 10대부터 40대까지 홀로 헤엄치듯 움직였다. 채널 두개에선 다른 음악이 나오고 각자 어떤 음악에 맞춰 추는지는 자신만 안다. 혼자 헤드폰 벗고 보면 기괴하다. 바닷속처럼 조용한데 여기저기서 머리채를 강렬하게 흔들어댄다. 자기도 모르게 노래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음정 틀린 가락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재미있으려면 세가지 조건은 갖춰야 하나 보다. 계급장 떼고 함께이되 자신만의 춤 추기. 거기에 덤으로 눈까지 맞으면, 뭘 더 바라겠나.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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