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08 20:49
수정 : 2015.04.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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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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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어머니는 아침부터 한우를 구웠다. 그 고기는 일 년 반 만에 2주 일정으로 한국에 온 딸 앞 접시 위에만 놓였다. 마주 보고 앉은 아버지가 밥 위에 한 조각 놓으려니 어머니의 거센 태클이 들어왔다. 고기 조각을 쥔 젓가락이 어머니의 젓가락과 부닥쳐 일합을 겨뤘다. “너 먼저 먹어. 우린 만날 먹는다.” 시차로 꿈속을 헤매던 나는 난데없는 아침의 한우 조각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아버지의 젓가락은 김치와 콩나물 위에서 마음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젓가락 혈전은 아귀찜 집에서도 이어졌다. 벌건 아귀는 죄다 내 앞 접시 위에 쌓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콩나물만 팠다. 한 조각 옮겨 놓으려 들면 금쪽같은 콩나물이 있는데 감히 아귀 따위가 웬말이냐는 듯 질색했다. “너 사는 데선 못 먹었을 거 아니냐. 먼저 먹어.”
홀로 사는 88살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엔 관장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오자로 굽은 할머니 다리가 위태롭게 분주했다. 옆구리에 손을 얹으면 갈비뼈가 그대로 잡혔다. 세상이 자꾸 팽글팽글 돌아 서 있기 힘들다던 할머니는 그날 자양강장제 선전에 캐스팅될 것 같은 스태미나를 선보였다. 할머니는 새우 맛을 보여주기로 작심했다. 대접 위엔 삶은 새우 탑이 섰다. 다 내 몫이었다. 한 마리라도 내 입으로 안 들어가면 경찰에 신고하려는 듯 할머니는 오다리 보초를 섰다. “먹어야 다 먹어야.” 오장육부 곳곳 빈틈없이 새우가 차도록 먹어 젖혀 겨우 미션을 완수하자마자 할머니는 밥을 담았다. 새우 태산은 그까짓 애피타이저였던 거다.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게 월드컵 결승전인 양 할머니는 푹 빠졌다. 식도까지 꽉 차도록 밀어 넣어 밥 미션 클리어 하려 하니 또 벌떡 일어나 공기에 한 주걱 슬쩍 올렸다. 톰 크루즈도 못 당할 미션이다. “아 배 터져요.” “쬐~금 먹어놓고. 더 먹어야.” “배 터진다니까요.” “먹어야.” “배탈나요.” “먹어야.” “설사해요.” “먹어야.” 할머니와 내가 나눈 대화는 이 “어쩔시고~먹어야~” 타령이 전부다.
내가 밥을 먹었는지 밥이 나를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 됐다. 피라는 피는 죄다 위장으로 몰린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텔레비전을 봤다. 할머니가 곁에 앉아 손을 잡았다. 할머니 손등에 도드라진 핏줄이 만져졌다. 동물 다큐멘터리가 한창이었다. 물을 찾아 헤매는 코끼리, 기린 따위 행렬이 이어지더니 해설이 흘렀다. “드디어 해갈한 기린, 목을 축이자 다른 욕망이 분출합니다.” 쪼그라든 할머니와 중년의 손녀는 말없이 기린의 교미를 함께 보았다.
아무래도 결정적 장면은 자른 거 같다. 기린의 교미는 싱거웠다. 채널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색색깔 한복을 입은 소리꾼들이 도화타령을 부른다. “도화라지~ 도화라지~.” 사회자는 ‘~라지’에서 목을 꺾어줘야 한다고 시범을 보였다. 노랫가락에 할머니의 깡마른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할머니의 15평 남짓 다세대 빌라는 복숭아꽃 찾는 소리로 흥청거렸고 그 집 밖으로 목련이 한꺼번에 부풀었다. 곧 흐드러지게 생겼다. 그렇게 피었다가 어느새 갈변한 꽃잎을 봄비에도 떨궈 버릴 거다. 이별할 날짜를 받아 놓은 타향살이의 서글픈 장점이 있다면 그 목련과 복숭아꽃의 시간, 할머니와 기린의 교미를 함께 볼 시간, 어머니와 젓가락 승부를 벌일 시간의 유한함을 체감하는 것이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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