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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8 19:33 수정 : 2015.07.09 10:30

지난달 16일 열린 러시아월드컵 1차 예선 중국 대 부탄 경기를 응원하는 부탄 사람들.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켈러 드룩파!”(위대한 부탄) 지난달 16일 러시아월드컵 1차 예선, 중국 대 부탄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인데 팀푸 창리미탕 스타디움에 자리잡은 청년의 목은 벌써 쉴 태세다. 그 청년이 뻘떡 일어나 용이 중앙에 버티고 있는 국기를 흔들자 한바탕 ‘부탄’ 연호가 터졌다. 부탄에 하나뿐인 이 스타디움엔 좌석이 없다. 시멘트 바닥이다. 300눌트룸(약 5천원)짜리 표를 끊으면 선착순으로 앉으니 다들 서둘렀다. 한쪽 구석 중국 원정 응원대 100여명을 빼면 스타디움은 국기 색깔인 주황과 노랑 판이다. 분위기는 이미 이긴 거 같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물결 응원이 몇 번 오갔다.

이 흥분 속에 키라를 입고 새초롬히 앉은 초덴에게 승부 예상치를 물었다. “7:1이요.” 중국이 7골이란 거다. 며칠 전 홍콩전에서 7:0으로 깨졌다. 초덴의 예상치는 낙관적인 축이다. 틴리는 “두자릿수로 지지만 않아도 좋겠다”고 귓속말을 했다. 세살 애도 아는 분위기다. 이기지 못할 거란 걸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부탄 선수 입장하자 난리 났다. 몸 푸는 동안 빈 골대에 킥 연습을 하는데 마치 실전인 양 한 골 들어갈 때마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경기시작 5분 만에 중국팀이 세번 찬스를 맞았다. 부탄 골키퍼 하리 대 중국팀 전체인 것 같은 경기가 진행됐다. 경기장을 반으로 접어놓은 듯 부탄 골대 쪽에만 선수들이 바글바글했다. 중국 골키퍼는 가만히 서 있으려니 한기가 드는지 혼자 제자리 뛰기를 하며 외롭게 몸을 풀었다.

어쩔 수 없다 해도 ‘에헤라디야’다. “예스, 예스, 올레, 올레.” 부탄 관중들, 흥분했다. 포효 같은 환호다. 골인, 아니다. 부탄 선수가 한명이라도 중앙선을 넘어가 헛발질이라도 하면 스타디움은 감격의 도가니탕으로 들끓었다. 중국 선수가 절호의 찬스를 놓치는 그 깨알같이 많은 순간마다 관중은 자지러졌다. 그때 같이 죽자고 소리 지르는 맛이 쾌변의 감격을 닮았다. 중국팀은 고산증을 앓는지 부탄 골대 주변을 그렇게 맴돌고도 막판에 어쩌다가 한골 넣는 것으로 전반전을 끝맺었다.

정확히 그 공이 어떤 발에 걸쳐 어떻게 들어갔는지 관중은 잘 못 봤다. 전광판이 없다. 스타디움 저쪽 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내가 판을 뒤로 넘기자 숫자가 바뀌었다. 점만하게 보인다. 1:0.

후반전, 부탄 선수들은 마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 양 중앙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명만 외롭게 남의 영토로 살짝 들어갔다 돌아오곤 했다. 중국 선수들은 이제 발의 감각을 찾았는지 10분에 1골꼴로 골을 넣어댔다. 100여명의 중국 응원단은 첫 골엔 확성기로 노래를 부르며 환호하더니 나중엔 좀 시들해진 눈치였다. 골을 넣어도 당최 잘 안 보인다.

6:0이었다. 저녁 8시께가 돼 경기가 끝나자 비가 추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부탄 관중들 “올레, 올레” 노래를 부른다. 혹시 점수판이 잘 안 보여서 이긴 줄 아는 건 아니겠지. 이상해서 옆 부탄 관객에게 실망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체럽(40)은 “쿠웨이트 상대로 20:0으로도 진 적이 있다”며 “이 정도면 잘했다”고 했다. 19살 소남은 고를 입은 단정한 학생이다. 수줍어 입을 조금만 벌려 답했다. “두 팀 다 굉장히 뛰어났어요.”

진지한 소남과 달리 탄딘(20)은 우스개로 말했다. “중국팀은 프로야. 그런데 우리 선수들도 다 프로야. 선생님, 학생….” 부탄 대표팀 캡틴인 카르마 셰드럽 체링은 부탄국적기 드루크항공 기장이다. 18~19살 대표 선수들 중엔 학생이 많다. 14년 동안 국가대표로 뛴 우겐 도지(42)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집은 산골짝에 있었지. 공이 없어서 천 같은 걸 둘둘 말아 차고 다녔어. 돈 주는 클럽도 거의 없고 국가대표라고 월급이 나오는 게 아니니 직업이 없으면 힘들지. 나는 수력발전소에서 일했는데 출근 전 두시간, 퇴근 뒤 두시간 훈련했어. 축구가 좋아 뛰는 거지.”

져도 무조건 좋은 축구의 고갱이는 2002년 월드컵 기간 벌어진 ‘또 다른 파이널’ 부탄 대 몬트세랫 경기가 보여줬다. 네덜란드 광고 기획자 두명이 국제축구연맹(피파) 랭킹 최하위 두 나라에 팩스를 보냈다. 203위 몬트세랫과 202위 부탄이다. 그렇게 부탄에서 세기의 경기가 벌어졌다. 다큐멘터리 <디 아더 파이널>을 보면 당시 해설은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네, 몬트세랫 골키퍼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거 같습니다. 공을 찹니다. 아쉽게도 다른 편 선수에게 찼네요.” 경기 도중에 개 한마리가 경기장으로 난입해 뛰어다녔다. 결과는 4:0. 부탄이 이겼다.

두 팀은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잠시 뒤, 트로피는 두 팀에 한쪽씩 둘로 갈라졌다. 부탄 어린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들어와 몬트세랫 선수들을 둘러싸고 사인을 받겠다고 떼로 손을 뻗어댔다. 개만 빼고, 아이들과 어른 관중, 부탄, 몬트세랫 선수들은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돌았다. 그날 부탄 라디오는 이렇게 방송을 맺었다. “화합과 희망을 보여준 아름다운 경기였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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