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07 19:27
수정 : 2015.10.08 10:48
|
부탄 수도 팀푸에 있는 전통의학병원 접수처. 사진 김소민 제공
|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부탄은 병원이 공짜란다. 양의뿐 아니라 전통의도 그렇다.
꾀병 부려 가봤다. 수도 팀푸에 있는 전통의학병원은 디귿자 모양으로 앉은 단층 한옥을 닮았다. 접수처에 가니 이름과 나이만 묻는다. 18번 방에 가라기에 들어갔더니 할머니 한명 허리에 부항을 뜨고 있다. 의사는 개량승복 같은 주홍색 조끼를 걸쳤다. 머뭇대니 들어오란다. “눈만 뜨면 피곤해요.” 사실이다. 철든 이후 만날 이랬다. 딱히 아픈 건 아니라 괜히 거짓말 같다. 의사가 맥을 짚더니 이어 혈압을 잰다. 꾀병이라 할까 조마조마하다. “아무 이상 없는데요.” 민망하다. “그래도 약을 지어 드릴 테니 아침저녁 드세요.” 갈색 염소똥 모양 알약을 준다. 계피 향이 났다. 다 공짜다. 양의병원에 가면 엑스레이 등 검사도 그냥 해준다. 다만 운이 안 맞으면 기다리다 득도하는 수가 있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국립종합병원에서도 못 고치겠다 싶으면 환자에 보호자까지 붙여 인도 병원으로 보낸다. 그런데 그 병원비, 교통비, 체류비를 나라에서 다 내준다는 거다. 환자가 누구건 상관없단다. 뻥이겠지? 부탄이 어떤 나라냐.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1인당 국내총생산이 한국의 10분의 1(2381달러)밖에 안 된다. 때때로 전기가 나가 이른 밤 로맨스를 부추기는 나라다. 외국 보조 없으면 국가재정이 휘청인다.
“내가 갔다 왔잖아. 콜카타.” 여행 가이드 체링(36)이 그런다. 지난해 부인 신장 옆에 담석이 생겼다. 수도 팀푸 종합병원까지 갔는데 의사들이 수술을 꺼렸다. 신장이 다칠 우려가 있다는 거다. 인도 콜카타 큰 병원으로 가라 했다. 부인과 체링의 기차비를 부탄 정부가 줬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아팠으면 비행기 삯이 나왔을 텐데.” 콜카타에서 부인은 입원하고 체링은 부탄대사관이 마련해준 숙소에 머물렀다. 시설은 후졌다. 푹푹 찌는데 에어컨 없이 팬 하나 달랑 천장에서 돌아갔다. 방 하나에 다른 부탄 간병 가족 5~6명과 함께 머물러야 했다. 그래도 공짜다. 식비로 하루에 150눌트룸(약 2550원) 나왔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여럿 있다 보면 재밌다고. 면회가 오전, 오후 딱 한시간씩밖에 안 됐거든. 나머지 시간엔 간병인들끼리 영화도 보고 시내 구경도 하고 그랬지.”
그래서 부탄이 의료 천국이냐?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 태어난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81살, 부탄은 68살이다. 일단 진단을 받아야 인도건 어디건 병원으로 보낼 게 아닌가. 의사가 한줌이다. 현대식 의대가 없다. 정부가 장학금 줘 다른 나라에서 공부시켜 온다. 부탄 복지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전국에 의사는 185명이다. 그중 37명은 외국인이다. 인구 3만명이 등록돼 있는 ‘하’ 지역에 양의 2명, 전통의 1명 있다. 한국으로 치면 보건소가 있는데 거기 일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다. 기본 의료 교육을 받은 공무원인데 그것도 한 보건소에 한두명밖에 없다. 산골짝 동네에선 그 보건소까지 가는 데 2시간씩 걷는 일도 태반이다.
수도 팀푸 종합병원 어린이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15살 소남은 7살도 안 돼 보였다. 뇌성마비로 몸을 못 가누는데 3살 때까지만 치료받고 병원 발길 끊었다. 최근에 자원봉사자가 부모를 설득해 다시 나오게 됐다. 그새 다리가 가부좌 틀고 앉은 모양 그대로 굳어버렸다. 물리치료사 둘이 소남을 잡고 근육을 풀어주는데 가끔 아픈지 인상을 썼다. 소남의 이웃 아이(13)는 근육이 흐물흐물 풀려 문제다. 몸을 묶어 일으켜 세워주는 장치 위에 앉히자 웃었다. 만날 바닥에 엎드려 올려다봤는데 갑자기 세상이랑 눈 맞추게 된 거다.
병원비에다 보조기구 다 공짜인데 이 부모는 왜 애를 병원에 안 데려왔나. 이 병원 창고에는 기증받은 휠체어 5~6개가 놓여 있다. 휠체어가 있으면 뭐하나. 팀푸는 산동네다. 길은 잔뜩 얽었다. 휠체어로 곡예를 하느니 차라리 걷고 마는 거다. 소남 엄마는 병원에서 걸어서 50분 떨어진 데 산다. 혼자 옷감 짜 아들 둘 키운다. 택시 타고 다닐 형편이 아니다. 몸 뒤틀린 소남을 등에 업고 걷는다. 앙상한 소남이지만 앙상한 엄마에겐 버겁다.
그나마 소남은 수도 팀푸에 산다. 하 지역에서 온 7살 데신은 이제까지 한번도 치료를 못 받았다. 농부인 부모가 밭에 나가면 몸의 절반이 마비된 데신은 홀로 방에 앉아 저녁이 되길 기다렸다. 그러다 물리치료실에서 공놀이 하니 신났다. 더 놀고 싶은 게 역력하다. 그런데 한달여 팀푸에 머물던 데신 부모는 이제 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농사에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거다. 하 지역엔 물리치료사가 없다. 자원봉사자 앨리스는 속이 탄다. “팀푸 병원까지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은 기대가 아주 커. 한번도 병원에 못 가보고 12살이 돼 몸이 뒤틀린 채 굳어버린 아이인데 부모는 한달 안에 혼자 밥을 먹게 해달라고 하지.”
부탄은 그래도 애쓴다. “국민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이 모토인 나라다. 무상의료는 국민총행복의 주요 기둥 중 하나다. 콜카타에서 부인 수술을 무사히 마친 체링은 원무과 창구에서 이런 생각을 했단다.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도인들이 많았어. 나는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 부탄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었어.” 적어도 부탄에선 온갖 첨단의료시설을 코앞에 두고도 돈 없어 써보지 못하는 절망감은 덜 느낄 것 같다. 다만 그 의료시설이란 게 잘 안 보인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