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16 18:58
수정 : 2016.03.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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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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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부탄 수도 팀푸에서 4시간 거리인 시골 추카 학교로 가는 길은 안갯속이다. 히말라야 산 옆구리를 봉고 승합차 크기의 고속버스가 달리는데 안개 목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여기 고속버스 메들리는 인도 노래다. 쿵짝쿵짝 후루룩, 나는 오금이 저리는데 옆 승객은 깊은 잠에 빠졌다.
정거장이랄 것도 없다. 그냥 대로변에 내려줬다. 산밖에 없다. 다행히 소남(25)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남 선생님은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텐진의 사촌인데 팀푸에서 잠깐 만났을 때 하소연을 땅 꺼지게 했다. “필기도구가 너무 부족해.” 그래서 가게 됐다. 소남 선생님이 까마득히 아래 반짝이는 불빛 몇개를 가리켰다. “저기가 학교야.”
추카 초등학교 학생은 150명인데, 학교에서 2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사는 애들 70여명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숙식 다 공짜다. 필기도구도 준다. 그런데 소남 선생님은 만날 “내가 떠나야지” 한탄이다. 여학생 기숙사 사감도 맡고 있는데 마음고생이 심하다. 교사 임용시험 보고 첫 발령지가 추카 학교인데 여름철 거머리도 거머리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괴롭다. 남편이 있는 팀푸로 전근 요청을 하려면 이 오지에서 적어도 4~5년은 버텨야 한다.
“나는 선생이 적성이 아니야.” 적성에 딱인 거 같다. 애들 괴로운 꼴은 못 보는 선생님이다. 그래서 더 괴로운지 모른다. 학교 건물이 150살 된 노인이 겨우 서 있는 몰골이다. 저녁 8시30분 점호 시간, 여학생 기숙사(사진)에 들어가니 7살짜리부터 16살짜리까지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창문이 다 깨졌다. 뚫린 창문은 천을 쑤셔박아 막아놨다. “여름엔 뱀이 들어올 수 있다니까.” 소남 선생님 한숨 땅 꺼진다. 철제 이층침대 매트리스도 부족해 한 침대에 둘씩 자는 애들도 있다. 매트리스가 화석 같다. 130눌트룸(약 2600원)짜리 침대 커버는 각자 사와야 하는데 그 돈이 없는 애들이 태반이다. 부모들은 자급자족하는 것도 빠듯한 농부다. 화장실은 걸어서 10분은 가야 나온다. 푸세식이다. 그런데 애들은 뭔가 재미난 일이라도 곧 벌어질 것 같은 표정이다.
1년 전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 예시는 7살이다. 9살 언니는 춤을 잘 춘다. 부모가 이혼한 뒤 애들이 붕 뜨게 됐다. 예시한테 물어봤다. “연필 몇개 있어?” 아주 자신있게 손가락까지 펴며 대답한다. “1개.” 언니한테도 물었다. “1개요.” 지그미(9)는 올해 입학했다. 부모가 청각장애인이고 벌이가 없다. 무릎이 거북등 같다. “너는 연필 몇개니?” “없어요.” “비누는 있어?” “없어요.” 소남 선생님 한탄이 장난스럽게 이어진다. “아이고. 내가 떠나야지.” 애는 그게 웃긴가 보다. 소남 선생님은 떠나지 않을 거다. 비누를 구할 거다. 그의 월급은 1만8000눌트룸(약 36만원)인데 대출 빼고 나면 8000눌트룸(약 16만원) 손에 쥔다.
애들은 태평하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7시, 애들이 기숙사 청소를 하고 있다. 청소하나 마나다. 쓸면 뭐하나. 늙은 건물이 ‘아이고’ 한숨을 쉴 때마다 흙가루가 후두둑 떨어진다. 그래도 자기 구역은 쓸고 닦는다. 화장실 계단을 청소하는 린진(13)에게 물어봤다. “학교 맘에 안 드는 거 없어?” “하나도 없어요.” “진짜? 겨울에 잘 때 춥지 않아?” “친구랑 껴안고 자면 안 추워요.” “밤에 화장실 갈 때 무섭지 않아?” “친구랑 같이 가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정말 학교가 좋아?” “친구들이랑 노니까 재밌어요.” 강아지를 쫓아다니며 뛰노는 이 애들은 리틀 부다인가. 안빈낙도의 달인들인가.
이날은 온 국민의 사랑인 5대 왕의 생일이라 행사가 열렸다. 교장 선생님은 개교 이후 첫 외국인 등장에 긴장했다. “오늘 특별한 손님이 오셨어요. 미스 코리아.” 나는 죄를 지은 심정이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조회 시간 같았다. 학생회장 여학생이 군대식으로 걸어나와 부탄 국기 게양을 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이어졌다. “아, 예, 오늘은 존경하는 5대 왕의 그… 저… 몇번째 생신이더라?” 옆에 선 선생님이 속삭였다. “네, 36번째 생신입니다.” 7살 예시는 코딱지를 파기 시작했다. 무념무상 고수의 솜씨다. 한 남자애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앞에 선 애 머리에 슬쩍 꿀밤을 먹였다.
애들한테 싫은 게 뭔지 물으면 다 좋다고만 한다니까 소남 선생님이 조삼모사 기법을 알려줬다. “네가 교장 선생님이 되면 뭘 바꾸고 싶냐고 물어봐.” 그랬더니 몇몇 정말 넘어왔다. 부모님 벌이가 없는 킨리(11)는 “양동이를 갖고 싶다”고 답했다. 빨래 때문이다. 다 제 손으로 해야 한다. 한 소녀는 “여학생 기숙사 유리창을 달고 싶다”고 했다.
동정은 섣부르다. 무엇보다 이 애들은 논다. 학교 마당에서 구슬치기랑 배구를 한다. 까마득한 산자락에 앉아 노래도 한다. 이 시골 애들은 자기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나 연필 한 자루지만 너도 한 자루다. 일단 다들 배가 부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상급식이다. 접시 하나 달랑 들고 가면 고봉밥을 얹어준다. 다만 식당은 지난 태풍에 날아가고 없다.
용인 사는 내 조카는 9살인데 필기도구가 방바닥에 굴러다닌다. 걔가 가진 연필 다 합치면 아마 추카 학생들 전체가 가진 수랑 비슷할 거다. 그런데 내 조카는 학원을 안 다니면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 걔가 앞으로 겪어야 할 그 교육을 가장한 고문을 생각하면 부족한 것 없는 내 조카가 이 애들보다 행복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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