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8 20:22
수정 : 2016.05.19 10:25
|
부탄 첫 트랜스젠더인 데첸(왼쪽)과 함께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첸초(가운데), 페마 도지(오른쪽). 김소민 제공
|
[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세요.’ 부탄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 트랜스젠더 모임인 ‘엘지비티(LGBT) 부탄’ 페이스북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런 문구가 뜬다. 커뮤니티를 만든 데첸 셀던(25)만큼 그 문구에 충실한 사람을 나는 별로 만나본 적이 없다. 그는 2008년 커밍아웃한 부탄 첫 트랜스젠더다. 낮에는 부탄 복지부에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춤춘다. 배우이고 두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데첸은 원색을 좋아한다. 입술은 불탄다. 키라는 샛노랗다. 자랑도 원색이다. “남자친구는 아니고 밀당 정도 하는 사이는 수십명은 될 거야. 내가 예쁘잖아. 성급하게 결정하면 안 되지. 누가 나한테 맞는지 알아가는 중이야. 내가 사실 어떤 옷도 잘 어울리고 매력이 있잖아. 유머도 있고. 사람들이 매력적이 되는 방법을 많이 묻는데 비결은 하나라니까. 항상 자기 자신이 되는 거야.” 내친김에 자기 댄스 동영상을 보여줬다. 온통 웨이브다. 예의상 잘 춘다니까 눈을 찡긋하며 그런다. “타고나야 한다니까.” 데첸의 자랑엔 묘한 매력이 있다. ‘너보다’가 없다. 너보다 내가 더 예쁜 게 아니다. 자기가 좋은 걸 얘기하는 거다. 솔직히 데첸의 춤 별로였다. 패션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나는 항상 내게 애증과 교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아서다. 이 여자에게는 세상이 다 자길 버려도 곁에 있어줄 포근한 짝이 이미 있다. 바로 자기다.
부탄 남쪽 치랑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했단다. 소녀 친구들을 떼로 몰고 다녔다. “아주 시끄러운 애였어.” 학교를 들어가면서 고민이 커졌다. “교복으로 부탄 남자 전통 옷인 고를 입어야 했는데 그게 그렇게 못 견디게 불편한 거야.”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차카’(여자 같은 남자)라고 놀리는 애들은 있었다. 14살 때 데첸은 여성 옷인 키라를 입게 해주지 않으면 학교를 안 가겠다 버텼다. 신문에 인터뷰도 했고 교육부 장관한테 편지도 썼다. 학교가 졌고 그때부터 그는 여자였다. 졸업 뒤 미용사로 일했는데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내가 또 센스가 보통이 아니거든.” 영화도 다섯 편 찍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게 자기 혼자만 용쓴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닌 거 같다. 수용의 공기가 그를 키웠다. 어릴 때는 엄마가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니”라는 말을 많이 했다는데, 막상 그가 자신은 여자라고 선언했을 때 어머니는 스스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비싼 천을 사다 그의 키라를 만들어줬다. 군인인 아버지나 네 형제자매도 그냥 받아들였다.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왜냐면 나는 좋은 인간이니까.” 언니는 두 아들을 동생에게 맡겼다. “나는 아주 엄격한 엄마야. 그렇다고 강요하진 않아. 나는 나를 믿고 애들도 믿어. 애들을 관찰하고 경험을 나누려고 할 뿐이야. 애들의 희망을 보조해줄 뿐이라고.” 애들 꿈을 그가 대신 꾸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많다. “지금은 시작 단계인 엘지비티 커뮤니티를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잘 알지 못해서 숨는 사람들이 많거든.”
내 머릿속에 ‘성소수자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란 공식이 단단한 걸까. 자꾸 따져 묻게 된다. 취직할 때 정말 트랜스젠더인 게 문제가 안 됐냐고. 차별받은 슬픈 기억이 없냐고. 데첸은 고개를 저었다. 데첸 옆에서 듣고 있던 페마 도지(23)가 보탰다. “내 생각엔 교육받은 사람들보다 부탄 시골 사람이 다른 성적 취향을 더 잘 받아들이는 거 같아. 부탄 시골에선 일만 잘하면 돼. 또 불교는 공감이 바탕이거든. 그냥 자기 인생 살게 내버려두지. 그런데 볼리우드 영화들이 들어오면서 게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해지는 거 같아. 그 영화들 보면 게이는 다 괴상하게 여성스럽거든. 뭔가 이상한 사람들로 그리니까.”
청년 페마는 연애 중이다. 열댓명이 다인 부탄 게이 커뮤니티에서 지금 남자친구를 만났다. “2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미소를 지었더니 그가 미소로 답하는 거야. 그때 위 속에서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어. 따뜻했어. 첫사랑이지. 데이트야 남들하고 똑같지. 집에도 데려갔어. 말은 아직 안 했는데 이미 아시는 거 같아.”
그렇다고 부탄이 엘지비티의 낙원이냐면 그건 아니란다. 일단 엘지비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부탄에 동성애가 있다고?’라는 생뚱맞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차별이 없는 게 아니라 차별할 만큼 그 존재가 보이지 않는 걸 수 있다. 페마는 그래서 한동안 괴로웠다. “수도 팀푸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여자친구들이랑 노는 게 즐거웠어. 그때는 정보가 없었어. 내가 비정상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 그러다 4~5년 전에 게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어. 답을 얻었으니까. 나는 보통사람이었던 거야.” 그래서 그는 엘지비티 커뮤니티를 키우고 상담을 하고 싶어한다. “나는 그냥 행복하고 싶어.”
그가 부탄에서 존경받는 라마이자 영화감독인 종사 잠양 켄체 린포체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줬다. “다양한 성정체성을 관용한다고 하지 마세요. 관용이란 말 안에는 뭔가 잘못됐지만 넘어간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당신은 타인의 다양성을 관용해선 안 됩니다. 존경해야 합니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