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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7 18:25 수정 : 2013.07.24 10:13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2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마음에 드는 가죽가방을 하나 샀다. 메디치 가문의 소유였던 산로렌초 성당 근처 가죽시장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던 중이었는데, 토트백 하나가 눈에 띄었다. ‘메이드 인 이태리’를 표방하는 고가의 명품가방은 아니었지만,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이 매력으로 다가온 ‘메이드 인 피렌체’ 가방이었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지역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 가방의 브랜드는 아이메디치(I MEDICI)다.

아이메디치는 원래 피렌체의 한 가죽공장이었다. 1952년부터 가죽제품 생산을 하다가, 1999년에 지금의 브랜드를 시작했다. 이후 각국에서 인기를 얻으며 팔리고 있는데, 그 비결은 질 좋은 가죽, 견고한 수공업,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삼박자의 조합이다. 가죽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베지터블 태닝(식물성분을 이용한 무두질) 가공을 거친다. 이렇게 만든 아이메디치의 가방은 쓸수록 은은하게 광이 나고 사용자에게 길들여져 색도 자연스럽게 변해가며 세월이 지나도 내구성은 여전하다.

사실 국내에서 피렌체와 같이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브랜드들은 있어왔지만 시장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섬유도시 대구를 동양의 밀라노로 만들겠다는 취지의 쉬메릭(CHIMERIC), 성수동의 자체 피혁 브랜드 등은 디자인이나 브랜딩·마케팅이 너무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소규모 가죽공방이나 독립 디자이너의 브랜드들은 지역 브랜드들의 취약점이었던 디자인과 브랜딩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들 또한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대중적인 지역 브랜드의 출현이 과연 가능할까? 이에 대해 가죽가방의 제작과 교육, 판매를 하는 서울 홍대 앞 ‘고구사’의 구본호, 고하림씨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규모 업체가 많아졌지만 대중적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은 ‘자본의 문제’라고 했다. “주문량이 적으면 직접 태너리(무두질 공장)를 통해 가죽을 싸게 구입하기보다 신설동이나 성수동의 가죽 수입업체들을 통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공임비를 제품에 매긴다 해도, 소비자는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보니 소규모 브랜드에서 질 좋은 제품이 대중적인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 어렵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한국에서 지역 브랜드 혹은 동네 브랜드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랜드페어에 몇백개에 이르는 신생 브랜드가 참여하고 가죽공장에서는 젊은 인력이 부족하니, 서로의 이해관계만 잘 맞는다면 언젠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구하지 못하는 가죽 재료는 없다. 이탈리아의 베지터블 가죽은 이미 한국에서 많이 보편화되었다. 한국의 피혁기술도 일정 수준으로 평준화되어 있다. 한국은 대중적인 지역 브랜드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제작업체에 시설 확충을 지원하고 디자이너들에게 마케팅의 발판을 마련해주던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둘을 연계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개성 있지만 자본과 생산량이 부족한 독립 브랜드와 자체 브랜딩과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작업체가 상생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지역 브랜드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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