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9 19:53
수정 : 2013.07.2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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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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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누구나 사두고 잘 입지 않는 옷들이 있다. 나에겐 작년 한국 브랜드 미미카위(Mimicawe)에서 구매한 이 트렌치코트(사진)가 그렇다. 차분한 색감의 카무플라주(패션에 적용된 군복무늬), 게다가 어깨 부분의 뾰족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귀여운 트렌치코트라고 생각했다. 같이 있던 친구는 “네가 정말 꼭 입어야겠다면 사. 그런데 나라면 안 살 것 같아. 너무 튀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이 어떻건 이미 사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계산했다.
하지만 아쉬운 소리를 한 친구 때문인지, 그 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장’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카무플라주(camouflage)는 어째서인지 나를 더 눈에 띄게 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은 옷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한 이들은 군복이라고 놀렸고, 덜 친한 이들은 특이하다 혹은 마지못해 멋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누군가 패셔너블함은 태도의 문제라고 했던가? 나는 카무플라주 코트를 입고도 멋있어 보이기엔 당당함이 부족했다. 매번 ‘나는 단지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패턴 중 하나로 만들어진 옷을 산 거야’라는 자기암시가 필요했다.
카무플라주 패턴은 패션에서 다양한 범주를 형성해왔다. 런웨이에서도 매 시즌 카무플라주를 차용한 옷들을 볼 수 있으며, 많은 브랜드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카무플라주를 사용한 제품을 내놓는다. 이번 2013 가을/겨울만 보더라도, 드리스 판 노턴, 패트릭 에르벨, 마크 맥네어리 등은 한층 더 진화된 카무플라주 패션을 제안했다. 기본적인 패턴에 꽃을 섞어 위트를 더하기도 하고, 다양한 소재에 프린트해서 고급스럽게 변형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영역을 확장한 카무플라주에 단순히 ‘밀리터리 패션’이라는 분류를 적용할 수 없다.
군복에서 기원한 역사를 제쳐놓고서라도, 단순히 색의 조합이나 모양을 보았을 때 카무플라주는 그 자체로 디자인의 영감으로서 충분하다. 적어도 서너가지의 색이 쓰이고, 반복되는 무늬가 무엇인가에 따라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본래의 기다란 구름 모양이 될 수도, 좀더 짧고 둥글둥글해서 귀여울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고민 없이 카무플라주를 입는 데에는 스스로 최면이 필요할까? 아니면 자연스레 시간이 해결해줄까? 타탄체크는 본래 18세기 스코틀랜드 지역의 주민들을 구별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리고 줄무늬 티셔츠는 악마의 무늬라고 불리며 중세시대부터 죄수들이 입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누구도 타탄체크와 줄무늬를 보고 이를 떠올리지 않는다. 카무플라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몇 해 전 디지털 무늬로 군복이 바뀌면서 더 이상 우리가 카무플라주라고 떠올리는 무늬는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풀숲과 동화되기 위한 초록색 무늬의 ‘위장’은 첨단 기술로 가능해졌다. 이제 카무플라주는 탄생했던 배경만 남고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곧 평범한 패턴으로서의 카무플라주의 도래가 머지않았다는 것이고, 나에게는 다시 코트를 꺼내어볼 수 있다는 희망이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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