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10 20:04
수정 : 2013.07.2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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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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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2005년께 스포츠웨어가 일상복의 경계를 비집고 들어왔던 때가 있었다. 당시 중고등학생들의 소풍 및 수학여행에서 엠엘비(MLB), 이엑스알(EXR), 에이식스(A6)와 같은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들이 선풍적인 인기였다. 나는 그 가운데 유독 엠엘비의 모자며 옷이 많았는데 사진의 메시 소재로 된 파란색 저지도 그중 하나다. 앞면의 ‘다저스 83’(Dodgers 83)에서 다저스는 ‘엘에이 다저스’ 구단을, 83은 선수의 번호를 의미한다. 의류 브랜드 엠엘비(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는 야구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제품들이 많이 나왔다. 유니폼의 원형보다는 팀의 마스코트나 로고 등을 차용해 좀더 일상복처럼 만든 옷이었다. 문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 몇 가지로 한정된 팀의 옷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점.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는 건 죽어도 싫었던 친구와 나는 최대한 인기 없는 스타일의 엠엘비 옷을 사거나, 뉴욕 메츠 유니폼을 해외구매 사이트를 통해 사기도 했다.
그 뒤 거의 10년간 스포츠 캐주얼에 관심이 없다가, 나는 최근 다시 이에 눈길을 돌리게 됐다. 야구뿐만 아니라, 프로미식축구(NFL), 프로농구(NBA) 등 다양한 스포츠 유니폼을 즉각적으로 반영한 스타일들이 스트리트 브랜드와 하이엔드 브랜드를 막론하고 더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먼저, 최근 스포츠 캐주얼 스타일을 가장 강력하게 유행시키고 있는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을 예로 들 수 있다. 힙합 가수 카니에 웨스트의 스타일리스트였던 버질 에이블로가 작년에 론칭한 브랜드로 외국에서는 에이삽 라키, 국내에서는 지드래곤이 입어 유명해졌다. ‘파이렉스’와 마이클 조던의 선수 번호 ‘23’이 적힌 헐렁한 농구 쇼츠와 저지가 브랜드의 트레이드마크다. 파이렉스는 레깅스나 바지 위에 농구 쇼츠를 겹쳐 입는 스타일링을 제시했는데 하이엔드 브랜드 지방시도 얼마 전 열린 파리 맨스 패션위크에서 비슷한 룩을 선보였다. 스트리트 브랜드의 대표주자 슈프림도 꾸준히 스포츠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옷을 선보이고 있다. 플라스틱 스냅 버튼으로 앞을 잠그는 야구 저지, 앞뒤로는 큰 숫자가, 소매엔 줄무늬가 있는 미식축구 저지, 농구 유니폼 스타일의 옷들이 슈프림의 색깔로 재해석되었다.
그런데 파이렉스와 슈프림은 국내에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았고 또한 해외에서도 이미 품절인 지 오래다. 지방시는 가격이 문제다. 유니폼에 기초한 스포츠 캐주얼이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이를 저렴하게 또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각종 유니폼 제작소가 밀집해 있는데 이곳에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유니폼을 맞춤 제작할 수 있다. 진짜 유니폼을 제작하는 곳이니 가장 정직한 스타일에, 팀명, 로고, 선수의 이름 및 번호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게다가 원하는 도안을 그려서 가져가도 컴퓨터 자수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 준다. 스포츠 유니폼은 대량생산에 적합해야 하는 특성상 복잡한 패턴을 필요로 하지 않고 제작 과정이 간단해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비록 유명 브랜드의 가치까지는 담지 못하더라도 정직한 만듦새의 유니폼은 하나의 신선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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