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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6 21:01 수정 : 2013.11.07 09:50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홀치기염색’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예부터 초등학교에서 손수건이나 못 쓰는 티셔츠를 실로 동동 묶어서 색색의 물에 담갔다가 실을 풀면 꽃처럼 피어나는 무늬를 만들어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한 염색 방식인 이 홀치기염색이 근래엔 영어식 이름인 ‘타이다이’(tie-dye)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패션에서 홀치기염색이 널리 알려진 건 1960년대 미국 히피들 덕분이었다. 반전과 평화, 자유를 부르짖는 그들은 무지갯빛 티셔츠, 롱 드레스,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다. 우드스탁 음악 페스티벌에서 사이키델릭 음악에 심취한 채 머리를 길게 기르고, 맨발로 다니던 그들에게 싸고 혼자서 하기도 쉬운 홀치기 염색은 안성맞춤인 염색법이었다. 원래 있던 옷을 재활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기도 했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던 그들의 정신과도 통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스트리트 브랜드(거리 브랜드)에서 유독 홀치기염색이 많이 보인다. 이 현상을 이끈 장본인은 아무래도 미국의 힙합 크루(집단) 오드 퓨처가 아닐까 한다. 이들은 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전세계 젊은이들의 스트리트 패션에 가장 큰 영감을 주고 있다. 그들이 입는 옷도 대부분 ‘오드 퓨처’라는 이름 아래 만든 제품들이다. 그 가운데 홀치기염색은 그들의 로고, 티셔츠 등 쓰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패션에서 인기있는 브랜드들도 올해 홀치기염색 스타일의 제품을 두루 내놓았다. ‘빈트릴’은 티셔츠, ‘슈프림’에서는 모자, ‘스투시’는 의류와 모자를, 유명한 스케이트보드 매거진 ‘트래셔’에서도 홀치기염색 의류를 선보였다. 우리나라 브랜드 중 ‘오버도스’도 티셔츠와 슬리브리스에 홀치기염색법을 도입했다. 사진은 얼마 전 구입한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허프’의 티셔츠다. 원래 옅게 염색이 되어 있는 티셔츠에 4가지 색으로 홀치기염색 처리를 했다. 색과 색의 경계가 흐릿하게 합쳐지는 것이나 희끗희끗하게 염색되지 않은 부분이 나타나는 등 염색의 전형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면 티셔츠에 홀치기염색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끓는 물에 직접 염료와 망초(매염제)를 넣는다. 그다음엔 자유자재로 묶은 옷을 넣는다.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회오리 무늬, 꽃무늬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염색 시간은 색깔의 진하기와 상관있으므로 알아서 조절한다. 물로 씻은 뒤 탈수와 건조만 거치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 이런 방법을 거친 티셔츠는 세탁해도 물이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홀치기염색은 짧은 시간 안에 비전문가라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너무 간단한 방식이라 지나치게 정형화된 디자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60년대 히피들의 무늬, 또는 어렸을 때 재미 삼아 만들었던 것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쉽게 질려버릴 수 있는 디자인이기에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패션에서 홀치기염색 기법을 활용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고 좀더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이려는 시도가 점차 생기고 있지만, 비약적인 진전을 이룰 만한 디자인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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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esc : 남현지의 시계태엽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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