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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05 19:53 수정 : 2014.03.06 09:57

‘노스페이스’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등골 브레이커’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노스페이스’의 유행은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즈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등골 브레이커는 존재했다.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이 교복 재킷 대신 입어서 멋을 냈던 건, ‘아디다스’ 저지(트레이닝복 상의)였다. ‘버디버디’를 통해 사랑 고백을 하고, ‘세이클럽’ 단체 채팅방에서 ‘하두리 캠’(영상채팅) 사진을 올리고, ‘싸이월드’ 스킨과 배경음악이 나의 취향을 대변했던, 2000년대 초중반 즈음이었다. 원래 등산을 위해 만들어진 노스페이스를 기능성과 상관없이 학교에서 입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로,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때는 무조건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그것도 바지는 안 사고 상의만 사서 교복 바지나 치마 위에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친구들은 영국, 캐나다, 브라질,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저지를 입고 교실에 앉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올림픽 개막식을 방불케 하는 생경한 풍경이었다.

밋밋한 교복에다 멋 부리는 데 가담은 해야겠고, 그럴 충분한 돈은 없던 내가 선택한 것이 오른쪽 사진의 아디다스 후드다. 유니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단체의 마스코트나 로고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게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양팔을 감싸는 세 줄의 디자인, 이른바 ‘삼선’만 있으면 됐다. 알고 보니 내가 산 건 캔자스 대학의 유니폼 중 하나였다. 왼쪽 가슴에 그려진 새는 학교의 마스코트였고 케이유(KU) 글자는 캔자스 유니버시티의 약자였다. 이 사실도 몇 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그만큼 옷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운동과 관련한 직업을 가지신지라, 어렸을 때부터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원없이 공짜로 신고 입었다. 그런데 패셔너블한 아디다스는 매장이 아니라 인터넷에만 존재했다. 스포츠 라인 아디다스와, 좀더 패션에 초점을 맞춘 ‘아디다스 오리지널스’가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같은 ‘메이커’인데 괜한 돈을 주고 사냐고 구박하셨지만 패셔너블한 스포츠 브랜드를 갖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 뒤 아디다스에 대한 이미지는 더 다양하게 다가왔다. 아디다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꾸준히 선보였는데 2002년부터 요지 야마모토의 라인 ‘와이(Y)-3’, 2004년 스텔라 매카트니의 정적이고도 날렵한 우먼스 웨어, 2008년부터 전개한 제러미 스콧의 기상천외한 컬렉션이 유명하다. 대학 시절 가장 존경했던 티머시 교수님은 그림 그리는 수업 중간중간 런 디엠시의 ‘이츠 트리키’(It’s Tricky) 같은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때 화면에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고 슈퍼스타 신발을 신고 나온 런 디엠시는 아디다스의 또 다른 이미지였다. 실제로 아디다스는 런 디엠시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런 디엠시는 심지어 ‘마이 아디다스’(My Adidas)라는 노래도 불렀다. 런 디엠시의 이름을 딴 라인이 지금까지 나오는 걸 보면, 힙합과 패션을 최초로 결합한 성공적인 사례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아디다스는 단순한 스포츠 브랜드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디다스는 가장 폭넓은 고객을 가진 브랜드다. 스포츠광, 힙합, 펑크족, 스케이트보드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람들을 브랜드에 끌어들였다. 스포츠 용품을 넘어 패션 브랜드로 기능하기까지, 그들은 이미지 확장에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래서 내가 오랜 시간 아디다스에 가지고 있는 기억이 다채로울 수 있었다. 나에게 가장 패셔너블한 스포츠 브랜드는 아직까지 아디다스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사진 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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