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9 19:45
수정 : 2014.03.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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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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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데님재킷이 노동자를 대표하는 옷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청바지로 유명한 브랜드 리바이스의 탄생 이야기는 누구나 들었을 테다. 오늘날 입고 있는 청바지는 사업 파트너였던 제이컵 데이비스와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1873년 골든러시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만들었다. 광부들이 탄광에서 작업복으로 입을 바지가 계속 찢어져서 내구성이 강한 옷이 필요했는데, 마침 천막에 쓰이는 데님이 있었고 바지로 대충 만들어 멜빵을 달아 입었다. 튼튼하게 재봉해야 할 곳은 구리못(리벳)을 박아 주머니 등을 고정했다. 리바이스 브랜드의 상징이 곧 내구성이기에, 그들의 로고도 말이 양옆에서 잡아당기는 모습으로 그려넣었다. 그래도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데님재킷 및 청바지를 입기 시작한 건 1950년대 제임스 딘이나 말런 브랜도 같은 스타들이 영화에서 입고 나오면서부터였다. 이때의 청바지는 내구성보다 멋, 반항, 기성시대 의복에 대한 대항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데님재킷에서 볼 수 있는 리바이스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1905년에 출시한 506 플리트 프런트 블라우스(pleat front blouse) 모델이다. 여기엔 보온을 위한 플리트, 즉 말 그대로 앞판에 원단을 겹친 주름이 있다. 가슴에 주머니가 있고 재킷을 몸에 딱 맞게 조일 수 있도록 뒤쪽 허리 부분에는 버클을 달았다. ‘506’과 같이 데님에 번호를 매기는 시스템은 판매자들이 구분을 쉽게 하려고 만든 것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미국식 패션을 재해석한 일본식 데님 패션이 성행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국식 데님을 입고 싶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만든 데님의 품질은 미국산에 훨씬 못 미쳤다. 그 뒤 몇십년 동안 제작 공장이 많이 생겼고, 특히 에도시대 때부터 방직을 해오던 오카야마 지역에서 품질 좋은 데님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이르러 일본은 최고의 데님을 만드는 나라 중 하나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남성패션 전문잡지 <프리&이지>(free&easy)의 편집장 오노자토 미노루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211개의 아이템에 대해서 쓴 <마이 러기드(My Rugged) 211>에도 ‘506’ 재킷이 나온다. 오노자토는 “이른바 첫번째 모델이라고 불리는 이 모델은 데님재킷의 왕이다. 모든 데님재킷이 이 디자인을 근본으로 재디자인, 재생산된다. 왜냐하면 두번째 모델인 507보다 길이가 더 길고 폭은 더 좁아 현대적인 스타일링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사진의 데님재킷 또한 일본에서 생산한 리바이스 506 제품인데, 고유한 디자인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옷을 얻은 경로도 참 특이하다. 친구를 만났는데 이 오리지널 리바이스 재킷(사진)을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샀다고 했다. 몇 번 입었지만 자기한테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며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에게 건네줬다. 이런 식으로 빈티지 옷을 받은 경우가 꽤 되는데, 아마 나를 비롯해서 친구들이 옷을 좋아하는데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고 고마운데 줄 건 없고, 자기도 싸게 산 빈티지 옷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는 행위는 무언가 마음을 다해 자기 일부분을 떼어주는 느낌도 드니까 말이다. 어쨌든 데님재킷의 ‘원조’가 나에게 온 이상 누구에게 주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사진 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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