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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9 19:48 수정 : 2014.04.10 15:50

사진 남현지 제공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면 타탄체크 머플러를 하고 찍은 사진이 유난히 많다. 여기에 타탄체크 무늬의 뉴스보이 캡(정수리에 동그란 싸개단추가 있는 짧은 챙 모자. 일명 ‘빵모자’. 옛날 신문을 돌리던 아이들이 주로 써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과 세트로 하고 다녔다. 선명한 무늬에 아크릴실의 까끌까끌한 감촉, 둥둥 뜨는 느낌이 들 만큼 가벼웠다. 시간이 지나자 머플러는 몇 번 칭칭 감기엔 짧아지고 모자는 머리에 걸칠 만큼 작아졌다. 이후 타탄체크가 쓰인 제품은 한 번도 사지 않았던 것 같다.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빨간색의 선명한 무늬보다는 민무늬가 좋았고 얼빵해 보이는 빵모자보다는 헌팅캡이나 야구 모자를 찾게 되었다. 물론 아예 눈독을 들이지 않은 건 아니다. (칼럼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과거 펑크 패션에 빠졌을 당시, 펑크의 대표 원단 타탄체크에 옷핀과 지퍼가 달린 본디지 팬츠를 가게에서 몇 번이나 입어봤기 때문이다. 타탄체크는 당시 지배계층과의 분리를 주창하는 반항적인 성격의 젊은이들이 입어 펑크의 대표적인 원단이 되었다.

타탄체크는 스코틀랜드에서 1000년 전부터 생산되어 오던 전통적인 격자무늬다. 스코틀랜드의 민속 의상 킬트(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많이 쓰였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원단이다. 원래 타탄체크는 스코틀랜드산 양모를 이용해 만들었지만 이후 화학섬유가 발달하면서 아크릴 같은 대체재로도 많이 만들었다. 만드는 방법은 직조한 원단에 색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미리 염색한 실로 원단을 짠다. 날실(경사) 씨실(위사)을 수직으로 평행하게 두는데, 짜인 원단을 자세히 보면 사선 모양의 능직(트윌)이다. 수동직기는 직접 페달을 밟아야 작동한다. 날실과 직조기의 페달을 실로 연결한다. 특정 페달을 누르면 페달에 연결된 경사들이 위로 올라가는데, 이때 공간 사이로 위사를 넣는다. 빨간색, 검은색, 초록색 등 타탄체크를 이루는 주조 색은 비슷하더라도 격자의 너비나 모양이 천차만별로 나온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스코틀랜드 지방의 여러 클랜(씨족)들을 상징하는 무늬로도 사용되었다. 18세기 중반 영국 의회는 클랜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군인이 아니면 타탄체크의 착용을 금지했다. 1822년 영국의 왕 조지 4세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해 타탄체크의 부활을 꾀했고 전통 타탄체크를 기반으로 다양한 무늬가 생산되어 일반인들의 옷에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나도 그 옛날 스코틀랜드 시골 할머니처럼 구석에 앉아 타탄체크를 짠 적이 있다. 8종강(20인치) 너비의 긴 머플러를 만들었다. 컬러칩은 스코틀랜드 고원에서 영감을 받아 올리브색, 갈색, 연두색에서 따왔다. 뻔한 빨간색 타탄체크는 만들기 싫어서였다. 그런데 시몬 로사의 2014 가을·겨울(FW) 컬렉션을 보다가 아차 싶었다. 빨간색 타탄체크가 전면에 등장하는데 타탄체크 제품이 어찌나 사고 싶던지. 그래서 사진의 머플러를 바로 구입했다. 그래도 드레스나 코트처럼 튀는 것보다 그나마 점잖은 아이템인 머플러로 골랐다. 아크릴 100%다. 요새야 아크릴도 울 못지않게 품질이 좋고 어떤 건 울보다 더 비싼 것도 있어서 옛날에 두르던 머플러보다 훨씬 포근한 것 같다.

타탄체크를 몸에 휘감은 채 총총거리며 걷는 모델을 보니, 안방에서 내복 차림으로 패션쇼를 하던 어릴 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런웨이라 해봤자 문지방에서 장롱까지 되는 짧은 거리를 찍고 오는 거였다. 프런트 로(맨 앞줄)엔 패션 에디터나 셀레브리티 대신 엄마와 할머니, 걸음마도 못 뗀 어린 동생이 있었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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