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30 19:29
수정 : 2014.05.0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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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셔츠. 사진 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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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보는 것만으로 눈이 시원해지는 옷이 있다. 바로 큼직한 꽃과 야자수가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다. ‘알로하셔츠’라고도 불리는 이 셔츠는 짐작하겠지만 하와이에서 처음 기원한 옷이다. 재밌는 사실은 원래 하와이에 살던 사람들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1850년대부터 일본과 중국 사람들이 하와이의 사탕수수, 파인애플 농장으로 많이 이민을 갔다. 그중 몇몇은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고국에서 기모노와 셔츠를 만들던 사람들은 유카타용 천을 일본에서 수입해 옷을 만들었다. 그래서 초기의 하와이안 셔츠엔 호쿠사이풍의 파도, 일본 소나무 등 전혀 하와이와는 관계없는 이미지가 쓰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하와이를 모티브로 한 셔츠는 1935년에야 만들어졌다. 셔츠 산업이 크게 성장하자 기존에 옷을 만들던 사람들은 하와이안 셔츠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여행객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만들기 위해선 하와이의 후덥지근한 기후와 이국적인 이미지들을 집어넣어야 했다. 하와이 꽃 플루메리아와 히비스커스, 훌라춤을 추는 여자, 파인애플과 같은 열대 과일, 야자수, 하와이 풍경 등 다양한 이미지가 셔츠에 등장했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원단과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다. 꾸지나무 껍질로 만든 하와이 전통 원단 타파천, 코코넛으로 만든 단추도 옷에 반영했다.
곧 하와이안 셔츠는 지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젠 천을 수입하지 않아도 지역의 원단 공장에서 공급할 수 있었다. 천의 생산 기술은 손으로 염료를 찍어내는 실크스크린 기법에서 자동화 기계로 발전했다. 이후 영화나 매체에 하와이안 셔츠가 등장하면서 하와이안 셔츠는 하와이를 대표하는 옷으로 자리잡았다.
대학생 때 미술 수업에서 ‘간접경험’이라는 주제로 작업한 적이 있다. ‘어디에 있든 일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살자’라는, 저학년이 할 만한 1차원적인 주제였다. 짧은 동영상을 제작했는데, 인트로 음악은 비치 보이스의 ‘서핑 유에스에이’로 깔았다.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이 나오다가 급히 장면이 전환된다. 직후엔 직접 학교 뒷산에서 우쿨렐레로 제이슨 므라즈의 ‘아임 유어스’를 노래 부르며 연주한 장면이 나온다. 물론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말이다.
그때 입은 옷이 사진의 셔츠다.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Stussy)에서 만든 옷인데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여름철에 하와이안 셔츠를 발매하는 건 하나의 유형처럼 자리잡았다. 하와이안 셔츠는 이제 옷의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이번 시즌 생로랑, 드리스 판 노턴, 구치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들도 이에 영감 받은 옷을 선보였다. 특히 프라다의 2014 S/S 컬렉션은 우쿨렐레를 치는 여자, 해변, 히비스커스 꽃, 야자수, 타는 저녁놀 등 하와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하와이안 셔츠는 국내 독립 브랜드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에서 만든 것이다. 야자수, 파인애플, 하와이안 걸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 귀엽게 셔츠를 두르고 있다. 각자 따온 모티브는 비슷하지만 브랜드만의 감성을 담아 개성 있게 풀어냈다.
한 지역을 대변하는 옷으로 하와이안 셔츠만한 것이 또 있나 싶다. 소재부터 만드는 방법, 이미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장르로 변화해왔지만 가장 중요한 ‘하와이’라는 정체성은 잃지 않았다. 하와이안 셔츠는 뻔한 옷이 아니라 역사에서 가장 유연하게 살아남은 존재다.
남현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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