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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13 19:32 수정 : 2014.08.14 13:55

콘차 머리끈. 사진 남현지 제공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지난 1월 도쿄에 2주 정도 있었다. 친구네 잠시 놀러 간 거지만, 개인적으로 만드는 독립잡지 <디어매거진> 4호를 위해 일본 디자이너 인터뷰 하나 정도 하고 돌아갈까 생각 중이었다. 디자이너숍이건 편집숍이건 구석구석 탐험하던 중이었는데, 고혼기에 위치한 ‘래리 스미스’라는 가게가 가장 인상 깊었다. 게다가 ‘인디언 주얼리’ 브랜드이니 4호의 주제 ‘주얼리 바이오그래피’에도 잘 들어맞았다. 도쿄를 기반으로 하는 인디언 주얼리 브랜드치고 단독 매장이 있어 나름 규모가 컸고, 한국 편집숍에서도 팔 정도로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게다가 제작도 도쿄에서 한다니 패션 제작업을 다루는 잡지의 인터뷰이로 제격이었다.

잡지를 본 디렉터 요시후미 하야시다씨가 촬영을 승낙했다. 우리(나, 한국인 친구, 일본인 사진가)는 쌀쌀한 일요일 공방이 있는 아다치구 센주미야모토초로 향했다. 항상 번화가만 다니던 터라 한적한 동네가 낯설었다. 지도 앱을 사용하는데도 위치를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런 우리가 걱정됐는지 하야시다씨가 길에 나와 있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젊은 얼굴에 우리 셋은 적잖이 놀랐다. ‘장인’이라 하면 흔히들 나이가 지긋하고 투박한 생김새의 제작자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전에 젊은 장인들도 많이 만났지만 머릿속 깊숙이 자리잡은 장인에 대한 이미지가 여전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한참 부끄러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지, 하야시다씨는 매체에 얼굴이 노출되는 걸 꺼린다고 했다. 수십년간 ‘인디언 주얼리’ 한 우물만 판 사람이 뭔가 더 꼼꼼하고 품질이 좋은 주얼리를 만들 거란 선입견을 다들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의외로 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인터뷰는 팔찌 하나를 만드는 전 과정을 지켜보며 진행됐다. 그가 인디언 주얼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니,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했다. 전통이 있는, 제대로 된 인디언 주얼리를 만들기 위해 미국에서 관련 장소만 1500군데를 돌았던 경험, 어렴풋이 역사책이나 구전으로 들었던 디자인 모티브들을 실물로 제작하면서 느낀 고충들, 인디언 주얼리를 만들려는 젊은 사람이 없다는 문제, 어떤 일이 있어도 품질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소신…. 그의 이야기는 ‘인디언 주얼리’가 생소했던 내게 소비자로서, 인터뷰어로서 무한한 신뢰를 갖게 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하야시다씨가 근처에 쓰케멘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며 우리를 데려갔다. 항상 공장 취재 뒤 사장님들이 권하는 막걸리도 한잔하고, 밥도 같이 먹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 친구는 비록 국수 한 그릇이지만 이렇게 대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엄청 감동한 눈치였다. 국수를 먹고 돌아와 짐을 챙기는데, 하야시다씨가 콘차(concha) 버튼으로 만든 머리끈을 선물해줬다. 콘차는 스페인어로 ‘조개’를 뜻하는데, 인디언 주얼리에서 많이 쓰이는 은단추다. 옛날 미국 원주민들이 딱딱한 조개로 버튼이나 벨트 장식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버튼 자체를 ‘콘차’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후로는 은화로 콘차 버튼을 만들었다고 한다. ‘래리 스미스’도 옛날 방식 그대로 은화로 제품을 만든다. 1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 머리끈을 맨다. 열과 성을 다해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동하고, 그를 존경하게 된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남현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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