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08 20:35
수정 : 2014.10.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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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설립된 뉴욕 패션 브랜드 배튼웨어(battenwear)의 아노락. 사진 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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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요즘 심심치 않게 ‘아노락’(anorak)이라 불리는 옷이 패션잡지든, 인터넷 쇼핑몰이든 등장한다.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라기보다 기존에 ‘후드’ 등으로 통칭하던 옷을 조금 구체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아노락의 기본 디자인은 모자가 있고, 앞면에 큰 주머니가 달렸으며, 앞을 개폐할 수가 없어 위로 뒤집어 입는 것이다. 원래는 이누이트족이 방한과 방풍을 위해 카리부(순록)나 바다표범의 가죽으로 만들어 입던 옷이라고 한다. 북극과 같은 추운 지방에서 사냥을 하거나 카약을 탈 때 입었으며, 방수를 위해 어유(fish oil)로 왁싱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랬던 아노락이 1950년대부터 방수원단인 나일론으로 만들어지고 패션잡지 <보그>에 등장하며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심미성보다는 등산과 같은 야외활동에 적합한 기능성 옷으로 취급됐다.
사진의 옷은 2011년 설립된 뉴욕 패션 브랜드 배튼웨어(battenwear)의 아노락이다. 재질은 방수를 위해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화학섬유인 나일론보다 뛰어난 촉감을 위해 듀폰사에서 개발한 특수가공사 타슬란 나일론(taslan nylon)을 썼다. 옆구리에는 입고 벗기 편하게 지퍼를 달았다. 기본적인 아노락에서 크게 변형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또한 ‘패커블’(packable), 즉 싸들고 다니기가 쉬운데 앞면의 주머니에 나머지 옷 전체를 넣을 수 있다. 우비처럼 가볍게 돌돌 말아 넣으면 야외활동을 할 때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입고 벗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배튼웨어가 소재나 디자인적으로 정직한 아노락을 출시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브랜드가 196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서핑, 캠핑, 등산과 같은 아웃도어 문화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기 때문이다. 독립 디자이너가 이끄는 모든 브랜드가 그렇겠지만, 이러한 브랜드의 주제는 디자이너 개인의 관심사이기 마련이다. 배튼웨어를 만든 하세가와 신야가 가장 관심을 가진 것도 아웃도어 스포츠였다.
하세가와 신야를 설명할 때 스즈키 다이키라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많이 언급된다. 하세가와가 아메리칸 캐주얼의 선구 브랜드 ‘엔지니어드 가먼츠’를 만들고 미국 브랜드 ‘울리치 울렌 밀스’의 디자인을 지휘한 스즈키 다이키 아래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자이너 스스로 이런 이력을 배튼웨어를 설명하는 페이지에 고스란히 적어놨다. 그만큼 두 사람의 공통점도 많다. 우선 그들을 쉽게 범주화할 수 있는 기준은 두 브랜드 모두 일본인 디자이너가 뉴욕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그들의 디자인은 과거의 옷, 즉 빈티지에서 영감을 받지만 현대적으로 변모시킨다는 점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개인의 관심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스즈키 다이키는 작년 하세가와 신야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엔지니어드 가먼츠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반영한 것이기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취향을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좋아해줄지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튼웨어의 아노락을 보며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 옷의 소재도, 담고 있는 재밌는 역사도 좋지만 하세가와가 의도한 대로 옷을 입는 것도 패션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노락을 입고 가벼운 등산이나 자전거타기 같은 운동을 해볼까 한다. 마침 그런 계절이 다가오기도 했다.
남현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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