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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1 20:28 수정 : 2015.03.12 10:09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최근 영화 <킹스맨>의 흥행돌풍이 화제다. 화려한 액션 신에 주인공의 세련된 슈트 스타일이 더해져 보는 사람의 눈이 절로 시원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킹스맨>에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슈트만큼 여러 번 등장하는 패션 아이템이 있다. 바로 ‘뉴에라’(new era) 모자다. 악역 밸런타인을 맡은 새뮤얼 잭슨은 분홍색, 보라색, 흰색, 파란색, 빨간색 등 영화 내내 뉴에라 모자를 쓰고 나온다.

뉴에라는 1920년 미국 뉴욕에서 탄생한 모자 브랜드 겸 제조회사다. 지금은 흔히들 ‘힙합모자’ 혹은 ‘야구모자’로 생각하지만,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뉴에라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뉴에라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빳빳한 챙의 캡 모자를 만들지 않았다. 창립자 에르하르트 코흐는 사업 초기에 당시 유행에 발맞춘 신사복용 모자를 수작업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모델의 이름은 ‘개츠비’로, 피츠제럴드 소설의 주인공처럼 젠틀하고 멋을 아는 남자를 위한 고급 모자였다. 뉴에라가 지금의 스타일과 비슷하게 된 건 30년대 에르하르트의 아들 해럴드가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다. 해럴드는 패션 모자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감지했고, 당시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스포츠인 야구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았다. 즉 ‘야구’ 모자를 생산하는 일이었다. 1934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팀의 선수용 모자를 제작하게 된 것을 기점으로 뉴에라는 야구모자 제작 업체로 거듭난다. 그리고 미국 내 메이저리그 팀들은 물론 지방 대학의 야구 모자까지 만들며 사업을 점차 확장해나갔다. 현재 뉴에라는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선수용 공식 모자를 공급하고 있다.

‘59피프티’. 사진 남현지 제공
새뮤얼 잭슨이 <킹스맨>에서 쓰고 나온 모자는 ‘59피프티’(사진)라는 모델이다. 뉴에라가 1954년 발표한 디자인으로 왕관처럼 위로 봉긋하게 솟은 모양과 일자로 빳빳한 챙 디자인이 특징이다. 보통 ‘뉴에라’라고 하면 이 모자의 디자인을 많이 떠올린다. 새뮤얼 잭슨의 모자와 패션에서 우리는 날렵하고 활동적인 야구선수의 모습보다 자유분방한 힙합 래퍼의 아우라를 감지할 수 있다. 구부리지 않은 챙과 약간 삐뚤게 모자를 쓴 방식이 그 힌트다. 59피프티의 공식 명칭은 ‘피티드 캡’(fitted cap)인데, 이름에 걸맞게 사용자의 두상에 딱 맞기 위해 9가지의 사이즈로 나온다. 펄프 소재의 심지가 들어 있는 챙은 편안한 착용감을 원한다면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지만 힙합 패션에서는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 빳빳한 챙과 더불어 신성시되는 법칙은 챙에 붙은 사이즈를 나타내는 스티커, ‘바이저 스티커’를 떼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설이 있다. 돈 없는 젊은 애들이 스티커를 떼지 않고 쓰다가 새 상품으로 교환하기 위해서, 가게에서 훔친 모자를 자랑하기 위해서, 힙합 패션에서는 ‘새것’을 중시하는데 이를 온몸으로 드러내는 방법은 가격표를 떼지 않고 입는 거라서(아이돌들도 종종 이런 패션을 펼쳐 보인다), 유명 래퍼들이 뮤직비디오에 쓰고 나와서 등등.

나도 중학교 때 사진의 뉴에라를 산 적이 있다. 검은색에 뉴욕 양키스의 로고가 박힌 모자였다. 인터넷에서 여러 코디 사진을 본 뒤라 챙을 구부리지 않는 게 ‘멋’이라는 건 알았지만, 스티커를 붙여놔야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참고로 새뮤얼 잭슨은 스티커를 떼고 모자를 썼다. 그의 대사처럼 현실은 영화와 다를지도 모른다. 현실에는 스티커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하니까 말이다.

남현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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