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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01 21:18 수정 : 2015.04.02 14:02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주말 저녁 홍대 거리를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이 있다. 한계를 모르고 위로 올라간 하의와 살결이 비치는 검은 스타킹. 완벽하게 아찔한 하의 실종 패션이다.

종종 클럽 앞에 늘어선 사람들의 다리를 쭉 훑으며 지나간다. 놀 마음이 없는 날에는 엄마가 내게 그랬듯 ‘아이고 젊다. 청춘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신나게 놀러 나온 날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30데니어(원사의 굵기를 표시하는 단위) 입고 올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스타킹은 살 떨리게 추운 날에는 원수처럼 밉다가도, 멋진 원피스나 치마와 함께라면 없던 자신감도 샘솟게 하는 애증의 대상이다.

별로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타이츠(tights, 허리까지 올라오는 팬티스타킹)의 탄생으로 미니스커트가 더 짧아졌다고 한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더 짧은 치마를 입고 싶어서, 속옷이 보이는 기존의 스타킹을 변형하고자 하는 욕구가 먼저일 수도 있다. 어쨌든 타이츠와 미니스커트의 상관관계는 닭과 달걀처럼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숙제다. ‘마이크로 미니’라고 불릴 정도로 짧아진 하의는 타이츠 하나에 무한한 권위를 부여했다. 활동이 자유롭고 가터벨트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고, 허벅지에 돌돌 말려 내려가거나 속옷이 보일 걱정도 없어졌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여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미니스커트와 타이츠의 조합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미니스커트의 창시자로는 영국의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제일 먼저 언급된다.

그녀는 런던 킹스로드에 위치한 자신의 부티크 바자(Bazaar)에서 깔끔하고 단순한 미니드레스를 팔기 시작했는데, 젊은 여성들은 즐겁고 섹시한 퀀트의 의상에 열광했다. 어머니 세대의 고상함을 상징했던 40년대 ‘뉴 룩’(New Look)은 화려하고 파격적인 미니스커트의 매력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0년대 중반 미니스커트 길이는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갔고, 스타킹의 자리를 타이츠가 완전히 대체하기에 이른다. 퀀트는 자신의 옷에 같이 입으면 좋을 타이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6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화려한 패턴과 컬러풀한 타이츠를 만들었다.

당시 모델 트위기가 입었던 미니스커트와 형형색색의 타이츠 패션을 떠올려보자. 지금까지도 많은 패션잡지들이 끊임없이 그때의 패션을 오마주하고 재해석한다. 수십년이 지나도 미니스커트와 타이츠의 신선한 충격은 유효한 상태로 남은 것이다. 70년대에 들어서 일반 스타킹은 전체 시장의 5%만을 차지할 만큼 팬티스타킹이 대세로 자리잡았고, 지금의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하게 타이츠를 입고 다닌다.

메리 퀀트의 스타킹. 사진 남현지 제공
소심한 자유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던 나에게, 우연히 발견한 메리 퀀트의 스타킹(사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런던의 빈티지 가게가 아닌 홍대 구석의 작은 가게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게다가 60년대에 제작된 진짜 그 시절 타이츠라니. 얼마를 주고서라도 집으로 모셔와야 했다.

1960년대 역동적이던 런던을 뜻하는 ‘스윙잉 런던’을 홍대에서 완벽히 소화하기는 어렵겠지만, 퀀트의 숍을 들락날락했던 소녀들이 ‘더 짧게!’를 외쳤던 것처럼 젊고 도전적인 정신을 닮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현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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