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13 19:30
수정 : 2015.05.14 11:27
[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누구에게나 유니폼을 입던 시절이 있다. 우리는 학창시절에는 교복, 군대에서는 군복,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가게 유니폼 등 ‘옷’으로만 구분되는 여러 단체를 거치며 살아간다. 유니폼을 입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제일 우선시되는 것은 하나의(uni-) 형태(form)를 입음으로써 서로 다른 개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 위해서다. 유니폼은 개인의 개성보다는 단체의 상징을 보통 드러낸다. 그래서 유니폼이 내뿜는 ‘몰개성’에서 탈피하고자 학생들은 그렇게 치마나 바지 단을 줄였다 늘리고, 군인들은 ‘사제’를 찾았나 보다.
‘청년 요리사’ 강석현이 자신이 매일 입는 앞치마를 직접 디자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5살인 그는 어릴 때 요리를 시작했고 지금도 어린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한 20대 친구들에게 하루 종일 입어야 하는 흰색 앞치마는 멋을 부리기엔 한없이 평범했다. 멋도 멋이지만 기능적인 면에서 따졌을 때도 이 몰개성한 앞치마를 계속 입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보통 앞치마의 주머니는 겨우 수첩과 펜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고, 목에 거는 디자인 때문에 장시간 일을 하면 무게중심이 목으로 쏠렸다. 그래서 트렌디하면서도 기능적인 앞치마를 시중에서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서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의 모티브는 자신이 좋아하는 ‘워크웨어’(작업복) 패션에서 따왔다. 작업복 중에서도 ‘오버롤’(멜빵바지)을 많이 참고했는데, 오버롤은 100년 전 철도노동자들이 입던 내구성 좋은 기능성 의류다. 원단은 쉽게 해지지 않는 데님으로 골랐고 어깨 부분 끈은 멜빵바지처럼 양 어깨에 거는 형식으로 디자인했다. 움직일 때 편하도록 다리 부분은 패턴을 둘로 나눴다. 앞치마에서 데님 의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속품 리벳(징), 진한 색상의 원단과 잘 어울리는 오렌지색 스티치, 벨트가 통과하는 고리 벨트루프, 손이 쑥 들어가는 큼지막한 주머니들까지. 워크웨어의 필수요소는 다 갖췄다. 또한 어깨끈을 버클로 조절할 수 있어 키나 몸집에 상관없이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유니폼’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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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만든 요리사 앞치마. 사진 공에이프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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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만든 요리사 앞치마(사진)는 곧 입소문을 탔고, 주변 식당들에서도 입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강석현 요리사는 그렇게 소량으로 앞치마를 제작해 주다가 아예 브랜드를 만들어서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방에서는 앞치마뿐만 아니라 조리복, 오븐장갑, 모자 등 다양한 물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이 만드는 ‘키친웨어’에서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친구와 함께 만든 브랜드가 ‘공에이프런’이다. 대학교 외식학부, 카페 등 요식업계 사람들은 물론 플로리스트, 미용사 등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앞치마를 애용하고 있다.
내가 생전 관심이 없던 앞치마에 눈길이 간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앞치마를 만들게 된 이유, 앞치마를 두르고 만든 요리, 앞치마를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 에스엔에스(SNS)에 올라온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풀어내는 요리사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인다. 나도 그중 하나다. 설거지를 끝내고 물 묻은 손을 옷에 쓱 닦아버리는 나지만 왠지 요리사들의 유니폼이 입고 싶어졌다.
남현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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