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5.25 19:53 수정 : 2006.06.09 16:06

임범 대중문화팀장

아침햇발

칸 국제영화제에 취재를 가서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처음 봤다. 군에 입대한 젊은이들이, 그곳의 억압적 문화 아래서 ‘죽거나 혹은 버티거나’ 하는 이야기로, 지난해 말 한국에서 개봉한 뒤 이번 칸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더없이 화창하고 쾌적한 칸에서, 그와 상반되는 갑갑하고 우중충한 군대 내무반을 봤기 때문일까. 올해 칸에서 나는 이 영화를 가장 인상 깊게 봤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걱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다루는 모순이 국제적으로 소통될 만큼 보편적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한국의 독특한 징병제가 외국인들에게 이해가 될수 있을까?

영화에서 말년 병장이 신병을 능글맞게 ‘갈굴’ 때, 또 고문관 신병이 맥락을 몰라하며 엉뚱한 말을 해댈 때 나는 배꼽을 잡았다. 유치하고 단순 무식해 보이는 그 권력 질서가 더없이 교활?c을 드러낼 때 나의 사병 시절이 떠올라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았다. 나는 군에 복무하는 동안 삶이 정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게 2년반을 버티는 방법이었다. ‘거꾸로 매달아도 시계는 간다’는 군댓말은 빈정댐이 아니라 귀담아들어야 할 격언에 가까웠다. 그 시간을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속으로 끌어들이면 위험하다. 영화의 세 주인공 가운데, 요령껏 잘 버텨내는 이는 제대 뒤 곧 군 시절을 잊어버린다. 고문관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이와, 군의 불합리함을 예민하게 의식했던 이는 자살한다.

알다시피 한국처럼 월급도 제대로 안 주고, 외출도 극도로 제한하면서 2년 넘게 모든 남자를 복무하게 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 없음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 군대에서, 그것도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입대해서 저항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군대 문제를 다룬 서양의 다른 영화들처럼 억압과 저항, 또는 굴복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간의 객체가 된 젊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시간을 잘 버텨내지 못하는 이들은 비극을 맞으며, 잘 버텨냈다고 해서 그 태도가 옳았던 것도 결코 아니라고 영화는 일깨운다. 군 시절 내 삶이 정지해 있었다고 생각해 온 나는 영화를 보면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했다. 삶이 정지해 있는 시간이란 없다.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고통받고 죽어간다.

그런데 외국 관객들도 나처럼 영화를 읽을까. 기자 시사회에서 한국 기자들은 웃는 동안, 외국 기자들은 조용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제 기간에 데일리를 발행하는 〈할리우드 리포터〉나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를 미국의 군대 영화와 비교하며 “흥미가 덜하다”거나 “군 내부의 억압 기제의 묘사가 약하다”고 썼다. 흥미나 묘사가 약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이들 잡지의 평은 초점이 미묘하게 빗나가 있었다.

영화를 잘 못 만든 걸까.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평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 신문은 “의무병역제가 남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며 “그 점에서 지금은 잊혀졌지만 과거에 있었던 프랑스의 의무병역제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


문제는 미학이 아니라 모순된 상황 자체에 있다. 미학은 다른 나라, 다른 유형의 모순들 속에서 보편성을 찾아내 소통하게 만든다. 그것을 힘들게 할 만큼 특수한 모순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모순이다. 한국의 의무병역제는 그만큼 특수한 모순이 돼가고 있다.

임범 대중문화팀장 ism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