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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1 21:56 수정 : 2006.06.09 16:05

김병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토론은 열심히 하는 듯한데 말미에 가면 원점에서 맴도는 회의는 답답증만 안겨준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신파는 찾기 힘들고, 결론을 낼 때는 대부분 분위기를 따라가고 만다. 금통위는 통화정책 결정기구다. 매달 초 회의를 열어 금리정책 방향을 정한다. 의사록은 한달 반 뒤 공개된다. 4월 의사록이 지난주에 나왔다. 곱씹어 볼 점이 많다. 금통위 의사결정 구조의 단면을 새삼 읽게 한다.

부동산 거품과 과잉 유동성에 대해 깊은 우려도 제기됐지만 결론은 두달째 콜금리 동결이었다.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단기 부동자금이 풍부한 데다 … 유동성 흡수를 위한 통화정책면의 대응이 필요하다.” “강남지역 아파트에 50% 안팎의 거품이 있다.” 등등. 그러나 물가가 안정돼 있고 경기와 원-달러 환율 흐름이 불확실하다는 판에 박힌 이유가 결국 압도했다. 환율에 끼칠 영향과 관련해 “이론적으로는 금리 인상이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실제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한은 실무진 의견이 있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한 위원의 발언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현 상황에서 정책금리 인상은 부동산 문제를 완화시키고 부동산 관련 대출 위험을 축소시킴은 물론 … 국민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통한 거시경제의 안정을 기할 수 있으며 …” 누가 들어도 금리 인상론이다. 그러나 그는 “소수 의견을 내지 않겠다”고 말을 삼켰다.

금리정책 변경을 극히 꺼리는 듯한 금통위의 소극성은 다른 달 의사록에서도 자주 비춰진다. 그럴 때마다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어서”라거나, “(그간) 정책의 효과를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단골로 따라붙는다. ‘2005년 연차보고서’ 문구를 논의한 회의 의사록엔, “통화신용정책이 현 경제 상황과 향후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선제적으로 수행된 점이 잘 나타나도록 … 서술을 일부 수정하고 …”란 대목이 나온다. 금통위가 과연 ‘선제적’ 결정을 해왔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 볼 일이다. 4월 의사록만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주저하며 시간을 보낸 사이에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금통위가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할 때가 예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금리를 올려 놓았어야 내릴 여지도 있는데, 그런 경기 대응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금통위의 고민은 깊어지는데,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진 형국이다. 자초한 것이다. 겨울을 앞둔 베짱이 모습이라면 심한 표현인가.

금통위원 구성부터가 문제다. 4년 임기 위원직은 화려하지 않아도 ‘좋은’ 자리로 꼽힌다. 장관급 인사도 기꺼이 오는 자리니 사실상 차관급 이상이다. 연봉은 장관급의 두 배가 넘고, 책임질 일도 없다. 소신껏 통화정책을 펴라고 만든 자리인데, ‘봐줄 사람 앉히는 안식처’처럼 돼버렸다.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다섯 자리는 ‘국민경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을 앉히게 명문화돼 있는데도, 거의 예외 없이 관변 학자나 전직 관료 차지다. 성장 논리에 젖은 관변 인물 일색인 금통위 구성과, 정부 재정정책을 견제하고 안정에 무게를 둬야 할 통화정책은 누가 봐도 엇박자다.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하면 모두 귀를 쫑긋한다. 금통위 구성은 관심권 밖에 있다. 대법원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경제와 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통화정책 결정기구의 무게 역시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기구가 정부의 인사 배출구여서야.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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