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1 18:20
수정 : 2006.07.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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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범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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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한 법률 조항이 불과 십년 사이에 세 번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맞게 될지 모르는 일이 벌어졌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영화법의 사전심의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영화법을 이어받은 영화진흥법은 사전심의를 등급심의로 대체하는 대신, 특정 영화에 대해 등급을 주지 않음으로써 상영을 못하게 하는 등급보류 조항을 만들었다. 그랬다가 2001년 이 조항도 위헌 결정을 맞았다. 그리고 만든 게 지금의 ‘제한상영가’ 조항인데,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이 이 조항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며 또다시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긴 세월을 두고 벌어진 일이라면 시대 변화가 헌법 해석의 변화를 낳았다는 말이라도 해보겠지만, 불과 10년 사이의 일이라면 입법 기관이 헌법을 무시한다는 말 외에 어떤 말이 가능할까.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뒤 삭제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의 제목을 빌려 말하면, 이건 ‘위헌이라도 좋아’인 셈이다.
96년과 2001년 위헌 결정의 취지는 같은 성인이 다른 성인의 영화 볼 권리를 막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생긴 제한상영가는 특정 영화를 상영조차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제한상영관에서만 틀도록 하는 제도다. 거칠게 비유해 “너 이 영화 보면 흥분해서 사고칠지 모르니까 보지 마라”는 게 2001년 이전이었다면, 이후는 “보고 싶으면 찾아가서 보라”는 것이다.
그럼 어떤 영화가 제한상영가 영화일까. 서울행정법원이 문제 삼은 게 바로 이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영화진흥법은 제한상영가에 대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만 해놓고, 그 하위 규정인 영상물등급위원회 규정은 “내용 및 표현기법이 18세 관람가 기준을 벗어나 과도하게 일반 국민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반사회적인 경우”라고만 해놓았다. 법원은 “어떤 사유로 제한상영가와 같은 제한이 필요한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분류기준에 규정될 내용 및 범위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제한상영 제도가 도입된 2001년 다섯 곳의 제한상영관이 세워졌으나 모두 문을 닫고 현재는 한 곳 정도가 남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으면 틀 곳이 없으니, “찾아가서 봐라”가 아니라 과거처럼 “사고칠지 모르니 보지 마라”와 동의어가 됐다. 이번 위헌심판 제청 사건의 주인공인, 지난해 11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멕시코 영화 〈천국의 전쟁〉은 독일, 영국, 브라질에서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네덜란드에서는 16살 이상 관람가로 개봉했다. 물론 다른 여러 나라도 제한상영 등급과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고, 그 기준을 정하는 데는 음란성 규제, 표현의 자유 등등 복잡한 변수들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외국은 그 기준을 좀더 명확히하기 위해 오래도록 노력해 왔다. 미국은 67년 ‘음란·외설물에 관한 위원회’를 만들어 20만달러의 기금으로 2년 동안 연구를 했고, 74년엔 “외설로 간주되려면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조항에 명백하게 위반된 방법으로 성적행위를 묘사한 경우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남겼다.
한국의 헌재도 98년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혹시 우리 사회엔 알게 모르게 다른 성인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깔려 있는 것 아닐까. 저들은 나보다 저열해, 그러니 이런 것 보면 위험해 하는 식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건 결국 자기를 비하하는 일밖에 되지 못할 텐데.
임범 대중문화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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