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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7 18:05 수정 : 2006.08.27 18:05

임범 대중문화팀장

아침햇발

얼마 전 엠케이픽처스는 5편 중 1편꼴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안녕, 형아〉 이후 두번째로 〈아이스케키〉를 지난 24일 개봉했다. 로맨틱코미디, 공포영화, 조폭코미디 등등의 붐을 좇아 특정 장르 영화가 유행처럼 쏟아지다가 주춤해지는 그간의 일부 제작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높이 사줄 모습이다.

〈아이스케키〉는 1960년대 말 전남 여수에서, 밀수 화장품 판매로 힘들게 사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주인공 꼬마가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살면서 아버지를 찾아 나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다. 가난에 더해 연좌제의 암울한 그림자도 살짝 드리워 놓았지만 한 아이의 성장 드라마 안에 과하지 않게 잘 녹여 넣었다. 좋게 보거나 무난하게 볼 수는 있어도, 나쁘게 볼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가족영화라고 할 때 방점은 아무래도 어린이다. 어린이가 볼 영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인, 가난하고 못살던 옛날로 돌아가야 할까.

남자들이 군대에 다시 가라면 죽어라고 싫어할 것이면서도, 여자들 앞에서 군대 얘기를 자랑처럼 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고 할까. 군대 얘기 듣는 여자들이 뭘 어찌 할 수 없는 것처럼, 옛날 얘기 앞에 요즘 어린이들이 뭘 어찌 할까. 물론 가난해도 씩씩하게 사는 주인공을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라는 영화의 전언이 읽힌다. 또 영화든, 동화든 어린이물이 가난한 옛 시절을 찾아가는 모습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아니, 너무 익숙하다. 내가 답답해하는 점은 여기에 있다.

여러 해 전에 어린이책 소개 기사를 전담해서 몇 달 쓴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한국의 창작동화 상당수가 아버지,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빌려 못살고 가난하던 옛날을 찾아갔다. 물론, 그 의도가 작품에 따라 다를 때도 있고 그래서 수작도 있었지만 드물었다. 대개는 관성을 따르는 듯했고, 그 관성은 어린이를 하나의 주체로 대하면서 친구처럼 대화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과연 어른들은 그 시절을 좋아할까. 의미와 용기와 희망의 여지가 그렇게 많았던 시대였을까. 혹시 기억의 왜곡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밀란 쿤데라의 〈향수〉는 냉전시대에 체코에서 파리로 망명한 주인공이 수십 년이 지나 개방화가 이뤄진 체코를 다시 방문하는 이야기인데, 고국을 그리워하던 주인공이 거기에 가서 맞부닥친 건 자신이 그곳을 너무 싫어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오래 떠나 있다 보니 이념과 체제 같은 큰 문제만 기억에 남았는데, 막상 다시 가 보니 편견과 풍문, 폭력에 가까운 참견의 문화 등등 자신을 괴롭혔던 자잘한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때 느낀 염증은 새로운 자각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걸 기억해낸 데에 불과하다. 여기서 쿤데라는 ‘향수’의 어원이 ‘건망증’과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어른들끼리 말할 때라면 이런 향수(=건망증)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어린이들에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이 책 기사를 쓸 때 독일 동화책을 보면서 놀란 적이 있다. 〈나는 너랑 함께 있어서 좋을 때가 더 많아〉라는 책엔 남자 아이의 선의가 거꾸로 여자 아이의 울음보를 터뜨리게 하는 짧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여자 아이가 왜 울었을까? 물론 몇 가지 답을 추리할 수 있지만 난 지금도 궁금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그렇게 작으면서도 소중한 의문들을 만나며 산다. 물론 이 책은 한 예에 불과하지만, 영화든 책이든 어린이물일수록 어른도 함께 탐구하는 태도로 만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임범 대중문화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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