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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5 18:20 수정 : 2006.09.05 18:20

이상수 베이징 특파원

아침햇발

중국 바깥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지도자에 대한 약간의 오해와 환상을 품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 지도자들의 ‘신중함’에 관한 것이다. 가령 최근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이 쓴 ‘노무현과 후진타오’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노무현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후 주석은 치밀하게 준비된 대화를 하는 반면 노 대통령은 수많은 ‘말부스러기’를 생산해 왔다고 나무랐다. 이런 수평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이 매우 신중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신중함이 무작정 찬양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그 배경에 밀실 정치문화의 그림자가 너무 짙기 때문이다. 강 주필은 유럽 외교관의 말을 따 후 주석이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는 듯”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건 그다지 참신한 발견은 아니다. 중국공산당의 거의 모든 ‘링다오’(지도자)들이 예외 없이 그렇게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는 듯”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발언은 늘 언젠가 들어본 듯하다. 가령 후 주석이 미국 예일대 연설에서 인용한 “부자가 가난한 이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묵자의 말은 장쩌민 전 주석이 1991년 5월 모스크바 방문 때 써먹은 적이 있다. 후 주석이 백악관 만찬에서 인용한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보리라”는 두보의 시구는 장 전 주석이 98년 11월 일본 방문 때 붓글씨로 남긴 바 있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내면서 중국 고위 지도자들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발언이 주는 느낌은 그야말로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는 듯”했다.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전체회의가 끝난 뒤 마련되는 기자회견장의 원자바오 총리나,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각국 지도부와 만난 자리의 후 주석이나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그러했다.

이들의 발언은 어떤 경우 거의 예측할 수도 있다. 가령 중-일 관계를 말할 때 이들은 “역사를 거울로 삼아 …”로 시작하는 한 세트의 발언 메뉴를 가지고 있고, 중-미 관계를 말할 때는 “중국은 평화와 발전을 중시하며 …”로 시작하는 또다른 세트메뉴가 있다.

중국 지도자들의 청산유수·정치정답·원고낭독형 세트메뉴 발언을 처음 듣는 외부 사람들은 대개 감동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원고낭독형 발언’은 고위 지도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산당·공산청년단 등 중국 공산주의 정치문화의 일반 특징이다. 심지어 대학원이나 대학생 모임에서도 학생 지도자가 적절한 순간 벌떡 일어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을 “원고 읽듯” 하는 걸 들을 수 있다. 중국에서 이 ‘세트메뉴 발언’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은 국가 고위 지도자는커녕 당 조직의 말단 서기도 할 수 없다. 후 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적어도 30~40년 동안 밀실에서 조정을 거친 이 세트메뉴 발언을 골백번씩 되뇌면서 국가 지도자 반열에 오른 이들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신중함’ 뒤에 ‘빅 브러더’의 우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이 때문이다.

‘말부스러기’란 어찌 보면 민주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공산당 민주집중 밀실정치 문화의 세트메뉴 발언에 흥취를 느끼는 건 개인의 취향 또는 몰취향이겠지만, 한국 사회가 전체주의로 가지 않는 한 말부스러기까지 포함된 진실한 육성이 광장에서 서로 충돌하는 게 불가피함을 이해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다른 목소리’에 대한 관용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정치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상수 베이징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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