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1 21:01
수정 : 2006.09.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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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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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요즈음 정치권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정당은 의원 11명의 민주당이다. 인물로는 한화갑 대표다. 여야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이나 견제구를 받고 있다. 2003년 열린우리당과 갈라선 이후 최고의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5·31 지방선거 때 호남에서 열린우리당을 크게 이기는 등 기반이 강해진 탓도 있지만, 내년 대선에서의 활용가치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전통 지지표를 복원하기 위해 민주당을 끌어오든 쭈그러뜨리든 호남 대표성을 찾는 게 시급한 과제다. 반면 한나라당에게 호남은 블루오션이다. 호남 민심이 갈라져 파고들 여지가 생겼다. 박근혜 전 대표 시절부터 호남에 대한 구애가 시작된 배경이다.
한나라당의 최근 호남 구애는 효과가 느린 유권자 만나기가 아니다. 성과가 단번에 드러나는 민주당과의 통합론 등 공중전이다. 대선 예비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비롯해 김무성·홍준표 의원 등 중진들이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에게는 밑져도 본전 이상인 꽃놀이패다. 통합이 이뤄져 민주당 간판을 가져오게 되면 부족한 민주 개혁성이 보완된다. 영호남 화합과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은 금상첨화다. 의원들이 다수 이탈해도 관계없다. 통합이 안 되더라도 민주당과 잠재적 우군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호남표에 대한 접근이 그만큼 쉬워진다.
한-민 통합론은 한 대표가 물꼬를 텄다. 얼마 전 한나라당 의원 모임(국민생각)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참석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이지만, 발언은 더 묘했다. 그는 “여러 현안에 대해 생각하는 게 똑같은데 정체성 같은 사람들끼리 헤쳐 모이자”는 김무성 의원의 제안에 “그럴 힘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좋은 정책을 공조할 수 있다는 정치원론을 넘어섰다.
한 대표의 이러한 광폭 행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여차하면 한나라당 행을 택하겠다는 신호를 여권에 보내 몸값을 올리려 한다는 게 하나다. 차기 한나라당 정권에서 총리나 당권을 꿈꾸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양날의 칼인 만큼 정치적으로는 매우 화려한 카드다. 하지만 정치인 한화갑을 해칠 수 있는 독 묻은 칼이다. 한 대표는 얼마 전 〈평화방송〉 ‘장성민입니다’에 출연해 고건 전 총리의 희망연대를 ‘구망(舊望)연대’가 될 수 있다고 힐난했지만, 자칫 스스로가 구망이 될 수 있다.
한 대표는 리틀 디제이(DJ)로 흔히 불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성장했으며, 지금도 그 안에 있다. 맹목적인 추종자여서가 아니라 민주당에 디제이의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디제이의 2대 업적인 “50여년간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6·15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은 민주당 강령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런데 한 대표는 디제이의 ‘옳은 것’을 허물고 있다.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한 대표가 ‘힘이 있으면 합치고 싶다’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한 최고위원은 6·15 정상회담을 ‘6·15 사변’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디제이는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햇볕정책을 직접 나서 옹호했다. 이에 대해 이상배 의원은 “디제이가 햇볕정책 실패에 사과는커녕 추태 부린다”고 맹공했다. 한 대표의 ‘친한나라 정서’와 달리 두 당의 정체성은 이처럼 기본부터 다르다.
한나라당도 마냥 즐길 일이 아니다. 역사와 배경, 핵심 정체성이 다른 민주당과 뭉치는 것은 90년 3당 통합과 97년 디제이피(DJP) 연합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추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정치발전을 후퇴시킬 또 하나의 인위적인 이합집산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호남을 얻으려거든 민주당에 청혼할 게 아니다. 스스로 구태를 벗고 다듬는 일이 먼저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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