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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1 18:04 수정 : 2006.10.01 18:04

권태선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아침햇발

지난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프랑스 교외 소요사태의 여파를 취재하면서 만난 프랑스의 알제리계 주민들 속에서 재일동포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것은 한국인 기자에겐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100년 이상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처절한 해방투쟁을 통해 겨우 독립한 조국. 그러나 그들은 그 조국이 아닌, 자신들이 맞서 싸웠던 프랑스 국민이 돼 이제는 교외라는 내부 식민지에서 일상의 차별을 견뎌내고 있다. 그 차별의 결과가 지난해 연말 소요사태였다.

그러나 프랑스 알제리인들의 상황은 재일동포의 그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최소한 자신을 대변해줄 국가와 그 국가가 부여하는 온전한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있었다. 물론 그들도 많은 차별을 받아왔고 또 현재도 받고 있다. 프랑스 공화국은 알제리 무슬림들을 결코 다른 프랑스인들과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1889년 속지주의가 도입돼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프랑스 국적을 갖게 됐지만 알제리계 무슬림들은 개별적인 귀화절차를 밟아야만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62년 알제리 독립 이후 그들은 다시 외국인 이민자가 됐고 그 뒤 속지주의 규정이 과거 식민지에도 적용되도록 법이 바뀐 뒤에야 이민 2세들도 프랑스 국적을 자동적으로 얻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알제리계 이민들이 프랑스 국적 취득에 연연한 것은 아니었다. 해방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프랑스 국적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이중국적을 허용함으로써 이들에게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남겨줬다.

그러나 일본은 남·북한에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1947년 출입국관리령에 따라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간주해 외국인으로 등록하게 했다. 이에 따라 조선적을 갖게 된 재일 조선인들 가운데 일부는 한-일 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국적을 얻었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조선적으로 남았다. 1948년에 한반도에서 사라진 조선이란 나라의 유민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난민의 지위로 떨어졌고 일본과 남·북한 어느 곳에서도 선거권이나 지방참정권 등 제대로 된 시민권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심지어 외국여행을 할 경우에도 일본의 재입국 허가서 하나에 의지해야 한다.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물론 외국에 나가더라도 일본과 한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영사보호를 받지 못한다.

프랑스 이민문제 전문가인 파트리크 웨일 파리1대학 교수는 프랑스의 동화정책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재일동포에 대한 정책은 지나치다고 평가한다. 일본의 경우는 당사자가 귀화를 원해도 과거 행적이나 성향 등에 대한 2년여에 걸친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심사 결과 불가 판정을 내려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등 지극히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학자 서경식 교수의 말대로 재일동포가 겪는 이런 고통은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남북 분단이란 현실이 빚은 참혹한 결과다. 그러나 해방 6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 우리 동포를 2류 시민으로 남겨놓는 것은 죄악이다. 아키히토 일본 국왕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진정성을 갖는다면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최대 희생자인 재일동포들에게 귀화 여부에 관계없이 일본 국민과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한과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들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세대가 식민지 역사의 아픈 상흔을 함께 다독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의 시대로 나가겠다는 다짐의 표시다.

권태선/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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