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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5 22:36 수정 : 2006.10.15 22:36

권태선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아침햇발

“완만한 비탈길에선 그 경사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한참 지나 보면 상당히 내려왔음을 깨닫게 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경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그런 위기의식이 든다.”(가토 고이치 일본 자민당 의원)

“아베 신조 총리는 자신이 구상하는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점점 숨막히는 나라가 되고 있다.”(이인하 재일동포 원로 목사)

“경찰이 주변에 배치된 것을 보고 우익의 테러에 대비해 우리를 보호하러 왔나 생각했다.”(우카이 사토시 히토쓰바시대학 교수)

지난 8·9일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포럼 2006’ 참가자들의 이런 발언 속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 이어 국가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아베 총리가 등장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온건·진보 진영이 느끼는 압박감이 그대로 배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평화포럼과 일본의 이와나미서점이 95년 첫 회의 뒤 11년 만에 다시 연 이번 포럼의 주제 ‘우리들은 동아시아인이 될 수 있는가’는 무척 도드라져 보였다. 그동안 일본의 국가주의 진전과 함께 역사인식, 북한 핵, 영토문제 등이 불거지며 한국, 중국에서도 민족주의 강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동아시아인들은 개별 국가의 국가주의 확산을 막아내고 평화를 진전시킬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역사·평화·환경 분과로 나뉘어 진행된 토론 과정에선 동아시아의 범위에 대한 논란을 시작으로 역사인식과 발전단계의 격차 등이 부각되며 동아시아 정체성을 갖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심포지엄 중반에 전해진 북한 핵실험 소식은 오히려 우리가 함께 평화를 이뤄가야 할 공동운명체란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시켜 줬다. 가토 의원은 “북한의 핵실험은 안보문제를 넘어 동북아 나라들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보유가 일본 등 주변국의 핵무장론에 불을 지피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며 문제해결을 위해 모든 외교적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저명한 원로 정치학자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도 한·중·일이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협력하는 방향에 따라 동아시아 안보공동체를 향한 첫발을 뗄 수도 있다며 정치인들의 신중한 자세를 촉구했다.

그러나 핵실험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이런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와 별도로 인적·물적 교류 전면차단 등 자체 제재안을 내놓는 등 한·중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아베 총리가 첫 국회연설에서 고이즈미 총리 때 아시아 정책 기조였던 동아시아 공동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에 비춰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의 기조는 경제적으론 한·중과 협력하되 정치적으론 미-일 동맹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치의 장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아직 요원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결이 아닌 평화공존의 동아시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중국의 사막화 방지를 위한 한-중-일 협력 등 환경분야의 경험과 지식인 사이 교류 협력의 축적이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종합연구소 회장의 말처럼 중동 석유 도입을 위한 공동의 송유관 프로젝트나 교류의 인프라를 위한 공동의 싱크탱크 구성 등 개별협력과제부터 진행시키는 게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더 필요한 것은 우리가 정치에 끌려가지 않고 정치가 우리의 의견에 귀기울이게 만들, 국가의 벽을 넘어선 시민사회의 연대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국가주의의 비탈길에 버팀목을 세워야 한다.


권태선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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