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8 19:13
수정 : 2006.10.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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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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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그제 전세계적으로 주목할 일이 벌어졌다.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아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2354만명이 ‘빈곤에 저항하자’는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선 건 너무나 고통스런 지구의 현실 때문이다. 매일 3만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숨지고, 1억명 이상의 아이들은 가고 싶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며, 11억명의 사람이 오염된 물로 목숨을 잇는 게 오늘 지구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은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빈곤의 심화는 남의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해선 굶주려 숨질 정도는 아니다. 뻔히 알면서도 오염된 물로 목숨을 잇는 이들도 우리 주변엔 거의 없다. 대신 우리의 고민은 어떤 음식이 좀더 안전한지, 입시지옥을 어떻게 해결할지 따위다.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곤 해도, 이렇게 영 딴판이니 그들의 고통을 진정 느끼기는 쉽지 않다. 나와 동떨어진 타인을 상상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우리 일상도 이래저래 힘들고 버겁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돕자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은 눈앞에 보이는 내 이웃을 생각하는 데서 출발해 조금씩 키워갈 수 있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항상 그들을 기억하고 불편해하는 마음, 이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의무다. 요즘 특히 기억해야 할 이들이 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다, 그 어느 때보다 나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핵무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핵실험 때문에 주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도 두고 볼 순 없다.
북한 지원 단체인 좋은벗들이 전하는 북한 소식을 보면, 북한 주민이야말로 핵실험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지난여름 물난리로 수백만명이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데다, 인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장애인이나 나이 든 이들의 형편은 더욱 말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 날도 점점 추워질 텐데, 세계의 경제제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더욱 옥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실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몇푼 도와준다고 해결될 일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감이야말로 사태 해결의 진짜 걸림돌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 그들을 기억한다는 걸 그들에게 알릴 방도를 찾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들의 가장 큰 공포는 아무도 자신들의 현실을 알지 못할 거라는 고립감이다. 우리가 북한 주민을 기억한다는 걸 널리 알리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의 정치인과 정부는 물론이고 전세계 곳곳에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도울 힘이 모아지고, 이 힘은 남북 관계의 파탄을 막을 압력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동북아 정세가 평범한 시민이 개입할 수 없는 차원에서 요동치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욱 방관하면 안 된다. 미국 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세계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하면서도 진보세력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체제가 안정됐을 때는 작은 힘이 별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혼란기에는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당신 안의 힘을 드러낼 때다. 개인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그것이 모이면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는 충분하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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