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4 21:36
수정 : 2006.10.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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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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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한 외국 경제학자가 국제 금융시장 상황을 두고 ‘소름 끼치는 평온함’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처한 국면이 꼭 그런 형상이다. 북한 핵실험이란 변수가 언제 폭풍을 몰고 올지 불안하다. 경제에 활력이 넘치고 펀더멘털(경제기초)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웬만한 외풍에도 경제 심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경기 부양론이 나오는 것도 단순히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서만은 아닐 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4.3%로 예상했다. 잠재성장률이 4%대다. 이 정도면 미세조정은 몰라도 경기 부양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부양론에 무게가 실리는 건, 북한 핵실험이란 대형 악재가 주는 압박이 무겁기 때문일 터이다.
과거 경기 부양책 중에는 큰 후유증을 남긴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부양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더러 흘러가는 대로 시장에 맡겨 두라고만 할 수는 없다. 경계할 건 ‘인위적’이고 무리한 정책이지, 경기 관리 노력 자체는 아니다. 시기는 고약하다. 대통령 선거가 내년에 있다. 경기 대책이 대선 전략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그간 경기를 받치라고 주문했던 이들도 정부가 부양책 가능성을 내비치니 대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이냐, 아니냐는 판단이다. 경제 정책이 때를 놓치면, 대가는 경제와 민생이 치른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못할 건 없다. 2001년 이후론 경기가 살아나도 온기가 퍼지기 전에 꺼지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성장 잠재력은 떨어지고 바닥경제는 지쳤다. 그래서 더욱 이번 경기순환만큼은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라 해도, 필요하면 경기를 받칠 준비는 해둬야 하는 국면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방안까지 제시할 능력은 없다. 정부가 고민할 일이다. 그래도 방향은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아니다. 금리 인하는 총수요 증가를 통해 성장을 가져온다고 통상 말한다. 하지만 지난 저금리 시대에 봤듯이 투자도 소비도 살아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한국 경제에선 전통적 통화정책 경로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값만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경기 부양에 나서더라도 성장 잠재력을 함께 키울 대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도 성장 잠재력 유지를 위한 경제체제 효율화에 노력을 기울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예컨대 은행을 보자. 가계 부문의 잉여 자금을 받아 산업 자금을 공급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기업 유휴 자금을 끌어다 주택자금 대출에 몰두하고 있다. 돈을 풀기 앞서 이런 금융 체계부터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 공무원의 밥그릇 챙기기 탓에 기업 발목을 잡는 등 쓸데없는 규제를 실질적으로 고치는 노력도 중요하다. 기업 투자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 하락세를 제어하면서 성장 잠재력을 키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잠재 성장률은 실제 성장률의 바탕이 되지만, 성장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이란 게 있었는지 회의적일 정도다. 부동산 정책만 빼면 말만 많았지 제대로 한 것이 없다. 말보다는 실천과 리더십으로 신뢰를 찾아야 한다. 북한 핵실험 사태가 악화하면 급격한 침체가 올 가능성도 있다. 그때 가서 허둥대면 경제는 불안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시나리오별 파장을 분석하고 ‘컨틴전시 플랜’(불측사태 대응계획)이라 할 만한 대비책도 준비해둬야 한다.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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