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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7 17:35 수정 : 2006.11.08 11:40

정남기 논설위원

아침햇발

몇 해 전 영국 주택을 사들이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한국 못지 않게 투자 수익률이 좋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집값은 저금리의 영향으로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80%가 올랐다. 1997년부터 치면 2.4배가 올랐다. 집값 급등은 사회문제가 됐고, 거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때 소방수로 나선 곳은 주택이나 세무 당국이 아니라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었다. 2003년 11월부터 다섯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연 3.5%에서 4.75%로 올렸고, 2004년 말부터 집값을 잡는 데 성공했다.

최근 미국의 집값이 빠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 1%였던 연방기금 금리를 2004년 6월 이후 2년여 동안 17차에 걸쳐 5.25%까지 인상한 효과가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가안정과 함께 고용 최대화를 정책 목표로 하는 연준이 그처럼 과감히 금리 인상에 나섰던 이유의 하나는 부동산 거품 우려였다.

정부가 집값 폭등 앞에 속수무책이다. 강력한 종합부동산세를 통한 수요관리도, 새도시 건설을 통한 공급 확대도 무용지물이다. 조만간 분양값 인하를 포함한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금융감독원이 창구지도를 통해 주택 담보 대출 축소에 나섰지만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저금리로 비롯된 과잉 유동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할 때다. 2년 전만 해도 400조원대였던 단기 부동자금은 9월 말 현재 529조원으로 불어났다. 가계 대출도 올 들어 9월까지 26조2천억원이 늘었다. 이 중 주택 담보 대출이 16조7천억원이다.

저금리의 부작용은 집값 급등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금 흐름을 왜곡시키고 민간소비까지 위축시킨다. 집을 사느라 수억원씩 대출받은 개인들은 원리금 부담 때문에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잘 나타난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1%(실질 기준) 증가했지만 소비지출은 오히려 1.8% 감소했다.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느라 소득이 늘어도 소비가 줄어드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과잉 유동성-집값 폭등-주택수요 증가-소비 위축-경기 둔화의 악순환에 빠진 모양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국은행은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았던 지난해 금리인상의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다. 지난해 10월 이후 다섯차례에 걸쳐 콜금리 연 3.25%를 4.5%로 올렸지만 7% 안팎으로 추정되는 균형금리에는 현저하게 못미친다. 추석 이후 집값이 다시 급등하면서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금리인상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를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한다. 금리를 올리면 많은 대출을 안고 집을 산 서민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과잉 유동성 해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거품이 더 확산되면 일본처럼 일시에 집값이 폭락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가계와 금융기관의 동반 부실화로 다가올 충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주식시장을 보자. 주가는 바닥을 찍고 나서야 다시 힘차게 상승한다. 안타깝지만 국민들이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부동산 거품을 빼는 방법은 없다. 경기가 자연스럽게 회복되면 그때 금리를 올려 거품을 빼겠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 한번 죽었다 깨어나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얘기다. 9일 콜금리를 결정할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왜곡된 금융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때다.

정남기 논설위원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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