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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12 21:36 수정 : 2006.11.13 13:42

신기섭 논설위원

아침햇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택 대추리의 김지태 이장이 지난 3일 법정에서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그는, 2004년 현장 답사를 하려던 정부 관계자들을 폭행했고 지난해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과정에서 폭력을 지휘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다. 대책위 쪽에서는 그가 폭력을 휘두르지도, 지휘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법정에서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정말 폭력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구속되어 5개월째 감옥살이를 한 그에게 실형 선고까지 내려짐으로써 대추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은 더욱 어렵게 생겼다. 그동안 정부와 주민들의 대화를 강조해온 그는 국방부의 대화 약속을 믿고 자진 출두했다가 구속됐기에, 대책위 사람들은 적어도 집행유예 정도를 기대했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들 말하지만, 이것의 전제는 모든 게 법대로 이뤄질 경우일 것이다. 법을 어긴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처벌받는다고 정말로 믿는 사람은 이 땅에 별로 없다. 불합리하고 부당한 법률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추리 주민들도 법이 자신들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김지태 이장에 대한 실형 선고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과 같은 소린데,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항의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날로 줄고 있다. 이와 함께 평화적인 사태 해결의 가능성도 줄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누군가 절충적인 해법을 내놓을 만한 문제도 아니다. 미군기지 이전을 되돌리는 게 가능할지, 평택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그곳 주민들은 또 어찌될지 등등 간단치 않은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제는 사태를 그냥 외면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정부가 알아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해법은 보상금 지급일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도 사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평택 주민들이 원하는 건 보상금이 아니라 그동안 살던 땅에서 계속 평화롭게 살 권리다. 김지태 이장은 어떤 보상을 바라느냐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너른 들판을 사시겠다고? 그 금액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나는 상상을 못할 지경이니깐. 힌트를 드리자면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서 지금껏 거두었던 벼의 낱알의 개수만 하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구기 위해 굽혔다 폈던 관절의 운동 횟수만 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가지 더. 그들의 시간, 한숨, 울음, 웃음 그것을 내려다보았을 별빛이나 시름을 달래주던 바람의 총량까지 합하면 대충은 나올 것 같다.” 그렇다. 그 땅에 스며 있는 농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을 키우고 먹여살린 자연의 혜택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하겠는가.

터전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한적한 시골에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짓고 뿌듯해하는 이들의 집착, 시한폭탄을 돌리듯 강남 땅값을 올리고 있는 이들의 집착, 그러고도 부족해 땅을 찾아 온나라를 뒤지는 이들의 집착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건 목숨을 빼앗기는 거라는 절박함과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겠다는 욕심은 비교될 수 없다. 대추리 농민들의 심정은 전·월세에 시달리며 가망없는 내집 마련을 꿈꾸는 많은 서민들의 심정과 전혀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추리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대추리가 대다수 민중의 고단한 삶과 동떨어진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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