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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14 18:08 수정 : 2006.11.14 18:08

유강문/베이징 특파원

아침햇발

한 화가가 기기묘묘한 그림을 그렸다. 새가 어항에서 날아다니고, 물고기가 조롱에서 헤엄치는 상상화였다. 얼굴 가득 흡족한 웃음을 머금은 그는 거기에 ‘조화’라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붙였다. 그걸 본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왜 어항에 새가 살고, 새장에서 물고기가 노는가?” 화가가 속삭이듯 답했다. “그게 조화인 게야. 조화란 이 세상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거든.”

요즘 중국에서 회자하는 ‘조화 개그’의 한 토막이다. 인터넷에서 주로 돌아다니는 이 우스개는 중국 관영 매체에서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는 ‘조화사회 용비어천가’에 대한 대중의 ‘냉소’를 보여준다. “조화사회란 아내와 첩이 사이좋게 지내는 세상”이라거나 “도둑이 장롱을 훔쳐가도 문 밖까지 나가 배웅하는 게 조화사회”라는 식의 장난스러운 뜻풀이가 실웃음을 자아낸다.

조화사회 담론은 요즘 중국을 움직이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손수 창안한 이 이데올로기는 지난달 중국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 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6기 6중전회)에서 당의 정책 목표로 채택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 전 주석의 이른바 ‘3개 대표론’에 이어 중국 공산당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 뒤부터 조화사회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용어가 됐다. 주택가엔 “조화사회 건설을 위해 밤늦게 큰소리로 떠들지 말라”는 경고문이 나붙고,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공원 안내판에도 어김없이 조화사회란 네 글자가 들어간다. 동물병원은 “당신의 고양이를 조화롭게 치료한다”고 선전하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사회자는 출연자에게 “오늘 의상이 참 조화롭네요”라고 칭찬을 건넨다. 남몰래 선행을 베푸는 이는 ‘조화 영웅’으로 불린다.

조화사회 담론은 중국 개혁개방의 부작용에서 비롯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개혁개방이라는 한 길을 전력질주했다. 그 결과 급속도로 시장이 팽창했고, 그 속에서 빈부·도농·지역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다. 중국에 시장경제를 심는 것을 지고지선의 목표로 삼은 이들은 이를 ‘필요악’으로 치부했다. 조화사회 담론은 이런 시장 만능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주의 공유제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화사회 담론은 그런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적 전환이다.

조화 개그는 이런 방향 전환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아직은 연약함을 보여준다. 조화사회 담론이 현실의 문제를 무마하려는 수사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개혁개방의 부작용이 낳은 현실이 그만큼 무겁고 힘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중국의 도시에선 지금도 2억명에 이르는 농민공들이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으며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농촌에선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경찰과 투석전으로 맞선다. 지난해에만 전국 각지에서 8만7000여건의 각종 시위가 벌어졌다.

조화사회 담론은 후진타오 주석으로 대표되는 중국 4세대 지도부의 야심작이다. 그들이 직접 감독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산당과 정부기관, 관영 매체들이 주연과 조연을 맡아 세세한 얼개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대는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체다. 13억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영화이니 이만한 블록버스터가 없다.

이 영화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조화 개그 어투를 빌려 예상하면 이럴 듯싶다. “최근 중국에선 보기 드물게 사회 문제를 다룬 실험적인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적 발상과 만화적 기법을 조화롭게 구현했다. 영화의 열정이 관객의 지지를 받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유강문/베이징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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