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21 17:17
수정 : 2006.11.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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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순회특파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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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오랫동안 편집국 안에서 일하다가 순회특파원이란 이름으로 다시 현장에 돌아온 지 몇 달이 됐다. 번번이 취재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대상을 섭외하는 일들이 녹록하지만은 않지만, 취재 과정에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분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그런 어려움을 씻어주고도 남는다. 특히 계절의 끝자락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요즘, 그 아름다운 얼굴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댄 존스는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의 교육담당 임원이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해 기지이전 반대운동을 펼치던 대추리 주민들을 위해 벽화 그리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럽 쪽 이슬람 취재계획을 세우고 영국 무슬림들 섭외에 어려움을 겪던 필자에게 한 지인이 그 분을 소개해줬다. 부인이 무슬림계 이민 밀집지역인 런던 동부 지역의 구청장일 뿐 아니라 그 자신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어 적임자라는 것이었다. 몇 차례 전자우편이 오간 후 존스의 도움으로 몇 건의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런던에 도착한 날 저녁 감사 인사차 전화를 하니 다음날 자신은 자선파티 준비로 무척 바쁘다면서도 가능하면 인사할 짬을 내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약속장소인 화이트채플 전철역. 한국 친구에게서 선사받았다는 개량한복을 입은 백발의 70대 노인이 헬멧을 쓴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다. 첫 대면인데도 그는 마치 10년 지기처럼 다정했다. 영국이슬람협회장을 만날 장소가 모스크니 머리를 가릴 숄이 필요하다며 근처 가게에 뛰어가 사다 줄 정도로 그는 세심했다. 그러곤 그날 저녁 파티에 꼭 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취재를 마치고 찾아간 파티 장은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방글라데시 무의촌 진료 지원 활동을 펴고 있는 딸을 돕고자 존스가 마련한 파티에는 그의 가족과 친척은 물론 앰네스티 동료들과 이웃 방글라데시계 주민들까지 참석했다. 참으로 정겹고 훈훈한 모임이었다. 매그넘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아들이 찍은 방글라데시의 의료상황을 보여주는 비디오가 돌아가고, 딸의 친구인 가수와 방글라데시계 사람들도 공연으로 도움의 손길에 동참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경매용으로 내놓고,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사주는 것으로 도왔다. 존스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시내의 출근시간 풍경을 그린 그림을 경매용으로 내놓았다. 일본인인 두 며느리까지 함께한 파티는 조그마한 세계인들의 나눔의 장이었다.
그의 헌신성과 더불어 경탄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소한 일에서조차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그의 자세였다. 그는 런던에서 몇 차례 만나는 동안 한 번도 자동차를 타고 나온 적이 없었다. “환경을 위해 될수록 자동차는 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날 파티의 따뜻한 풍경이나 취재과정에서 만난 무슬림들이 그에게 보낸 애정은 이렇듯 공적인 삶의 원칙을 사적인 삶에서도 실천하려고 애써 온 노력의 소중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공적 원칙을 사적인 삶에서 실천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경쟁위주의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이 그 경쟁에서 뒤처질까 조바심하고, 부동산 투기광풍을 개탄하면서도 그 광풍에 초연하지 못하는 게 우리네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실천을 위해 한걸음 내딛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물론 우리 안에도 수많은 존스들이 있을 것이다. 생활 속의 민주주의 운동, 공정무역 운동 등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그런 분들이 아닐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권태선 순회특파원 겸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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