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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07 17:11 수정 : 2006.12.07 17:11

신기섭 논설위원

아침햇발

나와 함께 사는 9살짜리 어린이, 다시 말해 내 ‘자식’의 요즘 꿈은 소아과 의사가 되는 것이다. 언제 또 꿈이 바뀔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번엔 제법 오래 간다. 의사가 되려면 국어와 수학을 잘 해야 한다니까, 딴에는 열심히 공부도 한다. 하지만 이 꿈을 실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른바 영어 조기교육 시기를 놓쳤고, 제 친구들이 몇 군데씩 다니는 학원도 갈 생각이 없다. 게다가 이 꿈을 이루려면 앞으로 9년 동안 사교육에 엄청난 돈을 퍼부어야 할텐데, 이를 넉넉히 감당할 부모를 만나지도 못했다. 이 어린이도 머지않아 ‘개천에서 용난다’는 것은 ‘석기시대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땅의 많은 어린이들처럼 말이다.

돈이 없으면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는 건, 과거에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요즘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육 격차가 부의 세습, 빈곤의 대물림을 부른다고들 걱정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뾰족한 해결 방법을 내놓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나도 해법이 없지만, 한번쯤 시각을 바꾸고 상상력을 발휘해보길 제안한다.

교육은 무엇하자고 하는 건가? 교육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인가?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교육이 민주주의를 지탱할 밑바탕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판단력을 갖추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권력자들을 통제하려면 시민들이 똑똑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빈곤의 대물림 따위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다. 빈곤은 복지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교육은 때를 놓치면 끝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웬만해선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 미국 텍사스주의 소수인종 권리 옹호 운동가들이다. 이들은 1996년 유색인종의 대학입학 우대 정책이 차별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더욱 적극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그것이 1997년 주의회에서 통과된 ‘상위 10% 법’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내신 우수자 대학진학 보장법’이다. 텍사스주 고등학생 가운데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은 공립대학 입학자격을 자동으로 주는 것이다. 가난한 시골 학생이건 부유한 도시 학생이건, 자기 학교에서 상위 10%에만 들면 오스틴 텍사스대학 같은 명문대에 갈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주 전체 고등학교의 10%가 텍사스대 학생 75%를 배출했다고 한다. 대부분 댈러스, 휴스턴, 오스틴 같은 잘사는 지역에 있는 학교들이다.

학력 격차를 무시한다는 둥, 훌륭한 학생의 교육 기회를 빼앗는다는 둥, 대학의 질이 떨어질거라는 둥, 온갖 반대가 많았지만 이 법률은 단 한 표 차이로 통과됐다. 그리고 마지막 한 표는 다름아닌 보수적인 백인 공화당 의원이 던졌다고 한다. 서부 농촌지역 출신인 이 의원은 10년 동안 자신의 지역구에서 단 한 명도 텍사스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걸 알려주자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이 제도 덕분에 대학을 들어간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지 못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볼보 효과’로 설명된다. 이 효과는, 대학 입학 시험 점수가 학생의 수학 능력보다는 부모의 자동차 종류(곧 재력)와 더 관계가 깊다는 연구 결과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법이 과연 이땅에서도 가능할까? 답은, 수능점수를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한편으론 바닥난 은행 잔고를 걱정하는 가난한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느냐에 달렸다. 우리의 상상력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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