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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4 17:25 수정 : 2006.12.14 17:25

김병수 논설위원 실장

아침햇발

그는 “일 저질렀다”고 했다. 얼마 전 집을 사고는 그렇게 말했다. 대기업 중견 간부인 그에게 집 장만이 뿌듯함만 안겨준 건 아니었다. 생활은 팍팍해졌다. 2억원을 대출받아 집을 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훗날 원금 갚을 일도 아득하지만 당장 이자만도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다. 아이들 학원비도 줄였다. 역시 봉급 생활자인 한 후배는 2억6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1억5천만원을 빌렸다. 어떤 지출부터 줄여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집값 폭등은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빚더미에 올려 놓았다.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 가계대출에 적용하는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고 한다. 대출 부실화에 대비해 손실 처리할 재원을 더 쌓게 한다는 것이다. 은행들도 자발적으로 주택 담보대출을 억제하겠단다. 주택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대로 가다가는 가계발 금융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별반 새롭지 않은 얘기를 새삼스레 하는 것은 5년쯤 전이 떠올라서다. 이다지도 판박이일까. 신용카드 대출이 주택 담보대출로 바뀐 것을 빼면 흘러가는 양상이 흡사하다. 2001년 말께, 지금처럼 정권 임기가 1년여쯤 남은 때였다. 김대중 정부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신용카드 대출을 두고 경고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이듬해 3월 길거리에서 무자격자에게 카드 발급을 남발해 온 일부 카드사들에 첫 제재 조처를 내렸다. 카드업계도 미성년자에게 카드 발급을 중단하는 등 몸을 움츠렸다. 이 무렵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까지 신용카드 대출 급증이 경기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정부는 약간의 조처는 취했지만 여전히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주저했다. 6월에야 신용카드사의 대손충당금 적립 요건을 강화하는 등 종합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이미 신용카드 거품은 잔뜩 커진 뒤였다. 10월에 이르면 신용카드 연체율이 10%를 넘어서고 신용카드사들은 헤어나기 힘든 부실로 빠져들었다. 신용카드 대란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 실패가 노무현 정부에 씌운 굴레였다.

2003년 정권을 넘겨받은 노무현 정부는 이듬해 초까지 신용카드 대란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제2 경제위기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정책다운 경제정책은 펴볼 겨를조차 없었다. 거시경제정책 면에선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전 정권이 남긴 유산의 피해자는 경제와 서민이었다. 경기는 바닥을 기고 신용불량자 수가 400만에 육박하는 시기가 한동안 지속됐다.

김대중 정부만 탓할 것도 못 된다. 그 역시 김영삼 정부한테서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유산을 넘겨받았으니 업보는 거슬러 올라간다고나 할까. 신용카드 대란도 어찌 보면 외환위기를 딛고 경기를 살려 보려는 과욕의 산물이었던 측면이 있다.

정권의 굴레 같은 유산 물리기 ‘전통’이 또 이어질까. 아니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은 빚 위에 집을 얹고 산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주택 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금융시장 위험 요인의 하나라고 했다. 제대로 된 경제팀 총수라면 말만 하지 말고 마땅히 정책적 대응에 나서야 할텐데, 마치 어느 연구기관 종사자처럼 말한다. 이해 못할 일이다. 정부는 주택 담보대출 고삐를 조이는 데 여전히 소극적이다. 내년과, 정권이 바뀐 뒤 1년 또는 2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정권 임기가 끝나면 국민은 다음 정권에 하소연해야 하는가. 거기에 부동산 거품까지 꺼진다면 ….

김병수 논설위원 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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