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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4 16:57 수정 : 2007.01.04 16:57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지난해가 마무리될 즈음 재벌들은 관례대로 계열사 임원 승진인사를 했다. 총수 2, 3세의 승진이나 영입이 두드러졌다. 현대백화점에선 30대 초반의 정지선 부회장이 경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고, 30대 후반의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은 부회장으로 두 단계 승진했다. 애경은 채형석 부회장을 중심으로 2세 경영 구도를 사실상 매듭지었다.

범엘지그룹에서도 총수 가족이 여럿 승진했다. 구자균 엘에스산전 부사장이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구자은 엘에스전선 상무는 전무로 올랐다. 지에스그룹은 허동수 지에스칼텍스 회장의 장남인 허세홍씨를 상무로 앉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씨는 기획조정팀 부장으로 입사한 지 1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상무보와 장남 조원태 부장도 상무와 상무보로 올랐다.

현대그룹은 더 파격적이다. 현정은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실장이 전무로 승진했다. 재벌가 자녀의 초고속 승진이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서른이 채 안 된 정씨의 전무 승진을 두고는 심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중견그룹까지 포함하면 2, 3세 승진 행렬은 들추기도 숨가쁘다.

후계 구도를 이미 굳힌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그랬듯, 재벌의 경영권 대물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으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씁쓸하다. 외환위기 원인의 하나가 재벌의 봉건적 가족경영과 방만한 경영이었다. 재벌개혁론이 거세자 재벌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시민사회 단체나 여론의 눈치를 보며, 총수 자녀를 마구잡이식으로 회사에 들이거나 승진시키는 일을 한동안은 자제했다. 그런데 지난해 승진 바람을 보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하다. 후계구도 정도가 아니라, 좀 심하게 말하면 가족들이 모두 기업이란 밥상에 젓가락 하나 더 놓겠다고 뛰어드는 모양새가 돼 가는 듯해 더 씁쓸하다.

창업자 후손은 기업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일본의 혼다자동차나,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요타자동차가 가족경영을 해 온 포드자동차를 앞질렀다는 등 외국의 수많은 사례를 굳이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봐야 외국에도 가족경영 기업이 많다는 반론이 곧 돌아올테다. 미국 에스앤피(S&P)500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500개 기업의 3분의 1 정도가 가족경영 체제라고도 한다.

그러나 분명하다. 기업가 정신과 경영 능력까지 대물림되지는 않는다는 평범함이 진리고, 가족경영이 국내 재벌에서처럼 모든 기업이 따라야 할 모델은 결코 아니다. 에스앤피500 기업의 3분의 1이 가족경영 기업이란 말은, 그 갑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2, 3세 중에 뛰어난 경영자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거친 전문경영인보다 능력이 떨어질 확률은 훨씬 높다. 대를 이은 가족경영의 실패로 숱한 재벌이 몰락하지 않았던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재벌가 2, 3세들도 전문경영인과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경영 투명성도 높아졌다. 그래도 최근의 재벌가 움직임에 마뜩잖은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건 재벌가 승진 잔치에 배가 아파서가 아니다. 무한경쟁과 지식경영으로 집약되는 글로벌시대엔 최고경영자가 기업 성패의 절반을 가른다고까지 하는데, 우리 재벌은 씨족의 담벽을 더 높이 쌓아올리고 있다. 2, 3세들의 경영 능력도 그렇거니와, 그들은 최고경영자 반열에 오르면 애써 자기 색깔을 내려 하거나 업적이 될 만한 사업을 벌리곤 한다. 안팎의 인정을 받기 위해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다. 그래서 더 미덥지 않다. 김병수 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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