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11 16:38
수정 : 2007.01.11 16:38
|
정남기 논설위원
|
아침햇발
몇 해 전 지인 한 사람이 급히 병원을 찾았다. 간염 환자였던 그는 쓰쓰가무시에 물리면서 복수가 찰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 한 병원이 수십가지 약을 처방했다. 그러나 상태는 더 나빠졌다. 견디다 못해 유명 종합병원을 찾았다. 입원 치료를 하면서 먹은 약은 간장약과 영양제 몇 가지뿐이었다. 그 뒤 1주일 만에 병세가 호전됐다. 가장 중요한 간 치료에 집중했던 게 주효했다.
나라도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부동산으로 중병을 앓다보니 수십가지 처방이 쏟아진다. 토지임대부 분양 등 이미 다양한 대책이 나왔고, 정부는 11일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종합적인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설익은 처방은 물론이고 원칙과 일관성 없는 대책들이 난무하고 있다. 환매조건부 분양. 참신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임대주택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년 동안 임대주택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토지임대부 분양은 국유지 부족도 문제지만 자칫 주택시장이 이원화될 수 있다. 분양원가 공개제 역시 해답은 아니다. 32평짜리 아파트를 서울 강남에 짓든, 경남 김해에 짓든 건축비 차이는 없다. 차이는 땅값에서 나온다. 판교만 보더라도 토지공사는 택지를 평당 100여만원에 수용해서 940여만원에 공급했다. 잘못된 땅값의 결정 구조를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분양값을 억제하는 제한적인 효과만 있을 뿐 집값 상승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고삐 풀린 분양값이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집값을 잡으려면 신규 주택보다 기존 주택시장의 수급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공급 확대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정부는 수십년 공급확대 일변도 정책을 펴 왔다. 건설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와 주택업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5대 새도시 때를 제외하곤 집값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교통 대책을 한번 보자. 수도권 도로는 아무리 늘려도 부족하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도로 확장이 아니라 승용차 사용을 줄이는 데 있다. 서울시의 버스 전용차로제가 성공한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주택도 마찬가지다. 해법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수요를 줄이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합부동산세를 뼈대로 한 노무현 정부의 수요관리(억제) 정책은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하나를 빠뜨렸다. 수백조원에 이르는 시중 부동자금을 틀어쥐지 못했다. 경제 성장률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면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것은 수요관리 정책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수요관리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부세 부과에 이어 한국은행이 돈줄을 죄고 있다. 금융권은 대출 방식을 담보에서 상환능력(소득) 위주로 바꾸는 추세다. 이것들만 제대로 시행해도 부동산 시장은 급속히 안정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각종 대책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용적률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 토지임대부 분양과 환매조건부 분양, 분양값 상한제, 원가공개 확대 등 온갖 것들을 죄다 동원했다. 여러 대책을 동시에 추진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위험한 발상이다. 환자가 아프다고 약을 마구 처방하면 사람이 먼저 죽는다. 정부가 외환위기 직후 무분별한 건설경기 부양책을 쓰면서 부동산 거품의 씨를 뿌렸던 과거의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한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