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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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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요즘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말로 불신보다 더 적합한 게 없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말하는 건 식상한 지경이고, 믿을 만한 전문가 집단도 찾기 어렵다. 한 수학자가 판사에게 석궁을 쏜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사법부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면 말 다했다. 이 학자의 억울함을 헤아리려는 심정과는 구별해서 볼 문제다. 사회를 걱정하는 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지도층의 반성을 촉구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 신세다. 진짜 반성하는 모습을 본 기억은 거의 없고 거짓이 어느날 진실로 둔갑한 일들만 생생하다. 반성이 사라지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건 우리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캐나다에서 나오는 좌파 연간 학술지 <소셜리스트 레지스터> 2006년판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거짓이 어떻게 진실로 둔갑하는지를 집중분석했다. 이 분석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대상이 언론이다. 언론은 거짓을 진실로 바꾸는 작업의 핵심 보조 연출자다. 이로부터 1년 만에 미국의 대중 잡지 <레이더> 온라인판(radaronline.com)이 이 비판과 딱 어울리는 기획 기사를 내놨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우파가 아니면서 침공을 옹호한 언론인과 그 반대편 인사들의 요즘 처지를 비교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옹호자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자가 됐고 반대자들은 옳았지만 가난하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당시 이라크 침공이 실패할 여지가 높지만, 민주주의 나라 건설을 위한 대담한 시도가 마음에 든다고 썼다. 자유주의 성향인 프리드먼의 이런 글이 우파들에겐 큰 힘이 됐을 것이었다. 반면, 베트남 전쟁 때부터 언론인 생활을 한 조너선 셸이라는 칼럼니스트는 진보 잡지 <더 네이션> 등을 통해 정반대 주장을 폈다. 외부세력이 군사력으로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시도는 실패한다는 게 역사의 진실이라고 썼다. 당시 한 번의 강연료로 4천만원쯤 받던 프리드먼은 요즘 6500만원쯤 받는 걸로 소문나 있다고 한다. 반면 셸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이라크 사태를 정확히 진단한 사람들을 주류 언론에 모셔가려 몰려오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유엔 무기사찰단원 출신으로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가 없다고 외롭게 외쳤던 스콧 리터와 그를 맹공격했던 주간지 <뉴리퍼블릭>의 젊은 편집인 피터 베이나트의 운명도 얄궂게 대비된다. 대량살상 무기 때문에 침공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던 베이나트는 미국 유력 단체인 외교협회(CFR)의 선임 연구원이 되어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쓰고 있다. 리터는 요즘 미국의 이란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지만 여전히 별로 주목받지 못한다. 또 전쟁을 지지한 무슬림계 인물인 <뉴스위크> 국제담당 편집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우파 비판자로 변신해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는 반면, 주류 언론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전쟁 반대 사설을 쓰던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로버트 시어는 2005년 영문도 모른 채 쫒겨났다.이렇듯 거짓이 판치는 이유를 학자들은 공론의 장이 사라진 데서 찾는다. 이라크 침공이야말로 진실을 따지는 공개적인 논의가 사라지면서 빚어진 대재앙이라는 것이다. 미국에 이라크 침공이 있다면 우리에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있다. 자유무역협정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평가하는 공론 마당은 없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언론이다. 그리고 언론을 바꿀 힘은 대통령의 거친 언사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각과 행동에서 나온다. 신기섭 논설위원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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