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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9 17:48 수정 : 2007.01.29 17:48

권태선/순회특파원 겸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난 23일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재심 결정을 듣는 순간 가슴 한켠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32년 만에 정의가 회복됐다고 기뻐하기에는 그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밥알을 모래알처럼 씹으며 살았다”거나 따돌림 때문에 “말을 잊어버렸다”는 유가족들의 발언은 마음속 깊이 묻어뒀던 개인적인 죄책감을 자극했다.

사형이 집행된 여덟분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 은사가 한 분 포함돼 있었다. 김용원 선생님이 그분이다. 무뚝뚝하셨지만 유난히도 물리과목을 못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가끔 따로 불러 설명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런 선생님이 국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라니! 믿을 수 없었고 믿지도 않았다.

국내외에서 사법살인이란 비판이 제기됐지만, 정작 그 분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으로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선생님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실까 걱정하는 게 고작이었다. 며칠 전 신문사에 사모님께서 방문하셨을 때, 그동안의 신산한 삶이 새겨진 주름진 얼굴 앞에서 얼마나 힘드셨냐고 차마 여쭐 수 없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32년이나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던 유가족들은 사법 살인의 최종 책임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신해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과거 인혁당 사건이 새롭게 조명된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알아보고 진행할 일이라고 했던 박 의원은 막상 결정인 재심 판결이 내려진 뒤엔 “법원의 결정일 뿐”이라며 사과 요구를 일축하고 입을 닫았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며칠 전 캄보디아 방문 때 읽은 기사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만들었던 크메르 루주의 ‘제2호 형제’로 불렸던 누온 치를 인터뷰한 기사였다. <프놈펜포스트> 12일치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대량학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신이 지시했거나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된 고문과 처형 관련 사실조차 부인했다. 프놈펜에서 17년째 살면서 <미러>라는 신문을 발행하는 독일인 노베르 클라인은 “오랜 세월 이곳에서 살았지만, 캄보디아인들에게선 메워지지 않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도 서로 믿을 수 없었던 크메르 루주 시절의 상흔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캄보디아인들의 이 응어리진 마음을 풀게 하자면 아픈 과거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과거 정리를 위한 국제법정이 다가오는 2월 프놈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누온 치의 인터뷰가 예고하듯 결과는 낙관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어두운 과거를 가졌던 많은 나라에서 그 과거를 극복하는 일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가해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가해 당사자도 아닌 박 의원으로선 가해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과할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억울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힘을 불리는 데 아버지의 후광을 한껏 이용했다.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지역을 자신의 발판으로 삼았고 아버지를 들먹여 과거 지지세력을 끌어모았다. 민법에서도 상속을 받을 땐, 채권뿐 아니라 채무까지도 함께 물려받는 게 원칙이다. 박 의원이 이 나라를 이끌 진정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의 빚을 갚고 가벼운 몸으로 새출발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박 의원의 사과를 기대해본다.

권태선/순회특파원 겸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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