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5 17:50
수정 : 2007.02.0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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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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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모든 미국인이 경주에 참여하기를 바라지만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다리에 쇠사슬을 차고 출발한다.” 1965년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민주당)이 하워드 대학에서 한 유명 연설의 한 대목이다. ‘흑인’들이 백인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쇠사슬을 제거하자는 게 요지였다. 이 연설 뒤, 흑인들에게 고용과 교육에서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하는 여러 특별우대 조처가 시행됐다. 공화당은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흑인 우대 정책, 특히 69년부터 시행한 ‘흑인 고용 할당제’에 대한 반대는 안에서 나왔다. 흑인 인권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일부 민주당 의원들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었다. 그 정책이 노동자 사이에 흑백 갈등을 낳은 까닭이다. 흑인 민권 운동가들은 “특혜는 성공한 흑인조차 자신의 능력으로 그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게 한다”는 지적도 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점차 곤경에 빠졌다. 92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여론을 따져 이런 제도를 거부함으로써 어렵게 정권을 되찾았다.
정부가 돈을 쓰지 않고, 누군가에게 손해를 감수하도록 하는 방식의 약자 보호는 폭넓은 공감 없이는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는 보호하려고 했던 이들이 더 큰 어려움에 놓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택임대차 보호법(1981년), 상가임대차 보호법(2001년) 도입 과정은 되새겨볼 만하다. 모두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간편한 확정일자 제도로 사실상 전세권을 대신하게 하고, 임대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게 했다. 혁신이었다. 그러나 두 법 모두 임대료 인상폭을 제한하는 조항을 두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건물 주인들이 법 시행 전 임대료를 큰 폭으로 올려 임차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임차인이 바뀌더라도 전·월세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하는 입법을 검토 중인데, 이런 경험을 살핀 것인가?
7월부터 시행될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은 요즘 노·사 양쪽의 비판을 받고 있다. 부담을 지는 기업주들의 비판은 어쩌면 당연한다. 그런데 노동계도 이 법에 거세게 비판한다. ‘2년 이상 기간제로 고용하면, 기한 없이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이 쟁점이다. 이 조항은 2년 정도 일하면 숙련도가 높아지는 업무를 맡는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고용주는 새 비숙련자를 값싼 임금으로 고용할 것이냐, 아니면 임금을 더 주고라도 숙련된 노동자를 계속 고용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에서 고용주가 직군 임금제 등 변형된 형태로라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제도는 의미를 지닌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단순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기적인 계약해지 위험에 처할 것이다. 문제는 정부 입법을 비판하는 노동계의 대안이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기간제 고용의 사유를 제한”하는 것을 비정규직 문제 해법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럴 경우 고용주는 사유 제한에 걸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하지 않겠는가.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을 놓고도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으로 덕을 본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일부 고용주는 고용을 아예 포기하거나 기계화를 택한다. 그런 작은 부작용조차 크게 부각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결과가 나쁘면 아무리 뜻이 좋아도 애초 의도가 나빴던 것으로 비친다. 존슨은 흑인 우대 정책으로 민주당이 어려움에 처할 것임을 미리 알았다고 한다. 알고도 추진하는 것과 모르고 밀어붙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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