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2.19 16:34 수정 : 2007.02.20 11:23

권태선 논설위원

아침햇발

“동남아 여성과 결혼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는 게 싫어 어디 가서도 국제결혼했다는 말을 하기가 꺼려진다. ”

지난 연말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만난 33살 남성 박아무개씨의 이 말은 국제결혼 이주자 문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흔히 들었던 이야기였다. 대만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 투킴도 베트남 친척들로부터는 ‘왜 대만 남자와 결혼하냐?’ ‘집안에 문제가 있냐’는 말을 들었고, 남편의 친척들한테서는 ‘베트남에 얼마씩 돈을 보내느냐?’ ‘다른 베트남 여성들처럼 돈 들고 도망가지는 않을거지?’ 하는 등의 말을 들었다며 착잡해했다.

이는 동남아나 중국 등지의 여성과 하는 국제결혼을 매매혼이나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과 관련이 있다. 많은 경우 국제결혼 여성들은 수동적인 희생자나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남편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사람이거나 여성에게 속아 넘어간 어리숙한 사람들로 그려졌다. 이 대조되는 이미지는 얼핏 모순돼 보이지만, ‘열등한 타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국제결혼 여성은 물론 남편들 역시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희생자들이다. “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게 매일매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사람가치가 없고 돈에 의해 평가되는 게 싫다. 그래서 국제결혼을 선택했다.” 베트남인 아내와 과일상을 하는 신아무개씨의 사례처럼 국제결혼은 어떤 의미에선 자본주의 체제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남성들과 여성들이 주변화된 자신들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국제결혼을 그들이 속한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압박에서 탈출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용기있는 움직임으로 보는 연구들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만난 결혼 이주 여성들은 대부분 명민하고 적극적이었다. 결혼 이주자를 위한 우리말교실에서 지난해 펴낸 문집에 실린 한 필리핀 여성의 아래 글을 보면 자본주의 세계화의 역사성까지 깨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0년 전=아시아 제일 부강한 필리핀인: 한국? 어디 있어요? 가난하다며? 우리 필리핀 사람들이 불쌍한 한국 사람에게 기부 좀 하자.

8년 전=우리 세계 제일 부강한 대만 친구; 뭐 한국 남자하고 결혼! 미쳤니! 한국남자는 여자를 때린다고 소문나 있어요!!!

작년=일본 친구, 대만 친구; 뭐 한국 남편하고 한국에 가서 산다고! 부러워요! 미혼친구 소개해주세요! 이영애 사인사진 보내주세요!


20년 후=우리 딸이 이스라엘 친구에게 하는 말; 나 어릴 때 한국과 대만도 잘 사는 나라였지!”

이렇듯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긴밀히 연결된 국제결혼 문제를 올바로 풀어나가는 일은 바로 그 대안을 추구하는 노력이 아닐까. 샤샤오지안 대만 시신대학 교수의 말처럼 국제결혼은 사회운동을 통해 당사자들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한다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가장 세계화에 뒤떨어진 듯한 농촌지역 다문화 가정을 들여다보면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며느리 둘을 필리핀에서 얻은 나주의 한 할머니는 “필리핀이 어디 붙어 있는지는 몰라도 내 며느리를 보면 얼굴이 희나 검으나, 필리핀 사람이나 베트남 사람이나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여성과 결혼했다는 박아무개씨도 아내를 통해 캄보디아가 한국보다 여성의 권리가 센 나라라는 것을 알았다며, 아내를 위해 자신의 남성 중심적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밑바닥에서부터 공감과 이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