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01 17:45
수정 : 2007.03.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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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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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연탄만큼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을까? 때맞춰 하루 두번씩 꼭 갈아줘야 하는, 재를 처리하기에도 불편하고, 1978년 한 해에만 가스 중독으로 600명이란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연탄은 오랜 세월 서민 살림의 한 상징이었다. 흑연에 가까운 성질을 가져 구멍을 뚫고 화덕을 이용하지 않으면 연료로 구실을 하기 어려운 남한산 무연탄 특성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특산품이 되었다. 연탄이 가정 에너지 소비의 70.4%를 차지하던 86년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연탄은 무려 68억장, 국민 한 사람에 연간 166장을 썼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요즘도 연탄을 때는 사람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따뜻한 마음에서 한 장 사보태고 싶어진다. 그래서 정부가 4월부터 연탄값을 12.3% 올린다고 밝히자, 대부분 언론이 “서민 가계는 어찌하라고?”란 반응을 보인 것은 쉬 공감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히 정부 결정을 비판할 일이었는지 나는 자꾸 되돌아본다.
여러 불편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히 연탄을 쓰는 것은 다른 연료에 견줘 값이 싸기 때문이다. 같은 열량을 내는 데 연탄은 도시가스의 반, 전력이나 석유의 4분의 1 값이면 된다. 애초 생산비가 싸서 그런 건 아니다. 서울에서 연탄 한 장 값은 388원인데, 정부가 연탄공장에 204원을 지원해 그만큼 값이 싼 것이다.
연탄을 쓰는 집은 전국에 20만 가구 정도로, 한 집이 연평균 1000장을 땐다. 그래도 가정에서 쓰는 것은 전체 소비량의 35%에 그친다. 나머지 65%는 7만여곳의 농·축산 업소와 가게 등에서 한 곳에 평균 4600장꼴로 쓴다. 그런데 석유값이 오르자 그동안 연탄을 쓰지 않던 사람들이 연료를 연탄으로 자꾸 바꿔 2004년부터 연탄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무연탄 소비량은 2003년 119만톤에서 이듬해 138만톤, 2005년에는 201만톤으로 늘었다. 가정 부문과 비가정 부문의 소비 증가가 비슷하다. 이제 국내 무연탄 공급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큰 고민거리는 이로 말미암아 정부의 지원금 부담도 2003년 600억원에서, 2005년 1025억원, 지난해엔 1356억원으로 커졌다는 데 있다.
정부는 겨울이 지나간 4월부터 연탄 보조금을 1장당 37원씩 깎기로 했다. 물론 기초생활 수급자들에게는 연탄값이 올라 생기는 부담만큼 정부가 연탄을 무상지급하므로 그들의 부담은 늘지 않는다. 하지만 한 해에 1000장을 쓰는 일반 가정이라면 이제 연간 3만7000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보조금 축소로 연탄 소비가 줄면 연탄공장도 즐거울 리가 없다.
정부 재정 부담이 얼마 커지든 연탄 보조금을 그대로, 무한정 지원하라고 하는 주장은 과연 옳은가? 연탄 때는 번거로움을 아는 나의 마음은 지원 쪽에 기운다. 그러나 머리로는 연탄 보조금을 조금 줄여, 계속 소비가 늘어나는 것을 막아보자는 정부 결정을 잘한 일이라고 본다. 재정을 더 늘려 사회복지를 확충하자는 제안이 공감을 얻으려면 정부가 가장 급한 곳부터, 효율적으로 세금을 쓰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까닭에, 세금을 적게 내는 사람들조차 조세 증가에 강하게 반발하곤 한다.‘서민들이 쓰는 연탄’이니 값을 올려선 안 된다면, 서민들이 쓰는 다른 소비품목은 왜 지원하지 않는가?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진실로 아쉬운 것은, 우리 사회엔 늘 결론이 앞설 뿐,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정남구/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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