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08 18:32
수정 : 2007.03.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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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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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후보 검증에 관한 한 한나라당에서는 당이 전권을 쥐고 있다. 특정 후보를 검증할 내용이 있으면 누구든 그것을 당에 의뢰해야 한다. 그러면 사실 여부는 당 경선준비위원회 아래 설치한 검증위원회가 가리는 방식이다. 대신 후보나 당원이 직접 검증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 같은 식구인 후보들끼리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제대로만 된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전혀 아니다. 첫째, 민주주의의 뿌리인 말길이 막히고 있다. 특히 정인봉 변호사가 이명박 전 시장의 1996년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사건을 검증하자고 떠들었다가 “조용히 하라”는 당의 명령을 어긴 죄로 당원권을 석 달 정지당한 이후로는 검증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다. 검증을 주장하는 자체로 ‘네거티브 선거꾼’ ‘해당 행위자’로 몰리는 탓이다. 새 내용이 없는 정 변호사의 폭로가 멋쩍기는 했지만, 그의 행위는 없는 사실을 꾸며낸 흑색선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나 당원들로부터 왜 네거티브를 하느냐고 집중적으로 몰매를 맞고 따돌림을 당했다. 결국 박근혜 전 대표 진영도 정 변호사를 법률특보에서 내쫓았고, 정 변호사는 당 윤리위원회에 반성문을 냈다. 이해할 수 없는 한편의 정치 코미디다.
둘째, 검증돼야 할 내용은 스르르 사라지고 있다. 돈 주고 증인을 국외로 도피시킨 과정의 미진한 의혹을 파 달라는 정 변호사의 요구는 이미 법의 심판이 끝났기에 검증 대상이 아니라는 한마디로 검증위로부터 묵살당했다. 이 전 시장의 재판 과정에서 돈받고 위증을 해줬다는 김유찬씨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사실이라면 후보 출마를 포기해야 할 만한 중대한 내용인데도 ‘김유찬=제2의 김대업’이라는 비난만 무성할 뿐 내용 확인에는 전력을 쏟는 것 같지 않다. 김씨는 검증위에 다녀온 뒤 “검증위원들이 자기들은 수사권이 없어 힘들다며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검증위 조사가 자칫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셋째, 대상인 후보들은 검증 도마에 오르기는커녕 무대 뒤로 사라졌다. 정 변호사나 김씨가 제기한 구체적인 의혹들에 대해 이 전 시장은 단 한 번도 가타부타 해명하거나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당원들을 걱정하게 했다는 점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며 초점 빗나간 사과를 하거나 “나는 다른 후보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완전히 딴청을 피우고 있다. 검증위가 방패막이 돼주고 있으니 직접 응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탓일지 모른다. 다른 후보들도 같은 처지라면 아마 똑같이 반응할 것이다.
넷째, 언론의 침묵이다.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파헤쳐 국민과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신문이나 방송사가 한 곳도 없다. 장관이나 대학총장 등 다른 공인들에게는 사소한 실수나 관행에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낙마하게 만들었던 서슬퍼런 언론이 아니다. 투기나 논문 표절보다 훨씬 심각한 사법 방해(위증 교사) 혐의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한테 터져 나왔는데도 검증위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의도적인 봐주기 아니면 언론의 직무 유기다.
그 자리가 중대한 만큼 대통령 후보 검증은 철저하고 엄격해야 한다. 허술한 검증은 나라나 정당, 후보 본인을 위해 두루 손해다. 민주국가에서 후보 간이나 언론, 국민의 후보 검증이 설령 좀 비방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폭넓게 허용되는 까닭이다. 검증권을 ‘경선 시장’에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한다. “당이 검증을 주도하겠다”는 것은 실현이 불가능한 욕심이자 국민에 대한 기만일 뿐이다.
김종철/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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