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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12 17:21 수정 : 2007.03.12 17:21

김병수/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도 끝나고, 미국이 정한 타결 시한(4월2일)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목매고 있으니 고위급 회담에서 막판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다. 노무현 대통령과 현정부가 왜 이리 서두르는지, 협정이 어떤 득실을 가져다 줄지, 협상 개시를 선언한 지난해 2월부터 제기돼 온 두 가지 근본적 의문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상한 협상이었다. 그 흔한 공청회도 없이 시작됐다.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선결조건을 선물로 바치고 협상을 구걸한 모양새였다. 준비도 허술했다. 효과나 전략을 분석하고 점검한 변변한 보고서도 없었다. 이후 협상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무역구제, 섬유 등 정부가 득이 있다고 내세운 분야는 판판이 깨졌다. 반면에 미국 요구는 하나 둘 먹혀든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 미국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초안을 덜컥 내주었다가, 반발이 심하자 뒤늦게 전문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 그때서야 법무부 등에서 위헌 가능성이 제기된다. “협정문 초안 작성 때나 협상시 관계부처 의견을 문의할 때는 문제 제기를 않다가 지금에 와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외교부에서 나온 태스크포스 참석자의 말은 백미다. 이게 준비된 협상인가.

준비 안 된 개방이 큰 후유증을 낳은 사례는 많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키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급속한 증권시장 개방은 한국 증시를 사실상 외국인 손에 넘기는 결과를 낳았다. 섣부른 외국 투기자본 유치는 세금 없는 국부 유출을 초래했다. 기업인수합병(M&A) 규제 완화로 닥친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은 투자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관련 법과 규정 보완에 나섰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른 뒤다.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한테 경쟁할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따져보고 해야 한다.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수지가 연간 수십억달러씩 적자를 낼 정도로 경쟁력이 취약한데, 미국식 ‘룰’을 받아들이면 우리 서비스 산업과 지식 산업 경쟁력이 높아질까? 도리어 싹을 틔우기 전에 미국에 예속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는 <국가의 역할>에서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요구를 수용하면 로열티 지급 증가, 초국적 기업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자체 기술개발 역량을 키우기 힘들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으로 오르기 위한) 사다리 치워 버리기’와 다름없다고 한다. 장 교수의 말을 원용하면, 지금 우리는 스스로 사다리를 치워버리려 하는 꼴이다.

정부는 시한에 얽매여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실천할 때가 왔다. 노 대통령은 협정 체결을 업적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반대로 큰 과오가 될 수도 있다. 시한에 얽매여 협상을 타결지으면 졸속 협상이었다는 비판이 분명히 제기된다. 후유증이 커지면 협상 당사자들은 물론 노 대통령까지 퇴임 후에 청문회 자리에 서게 될지 모른다. 그동안 협상 내용과 영향을 제대로 점검하며 시간을 두고 협상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우리가 협상을 깼다는 부담도 없다. 시한을 넘긴 게 결렬로 이어진다면 그건 시한이 ‘협상결렬 요인’(딜 브레이커) 구실을 한 것일 뿐이고, 그 시한은 미국이 정했다. 게다가 국민 불안과 국론 분열 원인을 해소하는 건 대통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노 대통령이 임기 말에 신뢰와 지지를 회복할지 여부를 가름할 분수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될 것이다.

김병수/논설위원실장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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