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3.15 18:36 수정 : 2007.03.15 18:36

권태선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아침햇발

‘좋은 패배자 A-, 좋은 건설자 A, 좋은 시민 B, 좋은 이웃 B-.’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가 매긴 전후 일본의 성적표다. 후나바시의 이런 평가는 일본이 전후의 잿더미에서 세계 제2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시민의식이나 세계인식은 턱없이 뒤떨어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2007년 3월 유럽과 동북아시아의 지형, 그리고 그 각각의 지형을 만들어낸 주요 당사국인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 보면 좋은 이웃 항목에서 일본에 B-를 준 후나바시의 평가도 지나치게 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유럽은 다가올 25일 유럽연합 창설 50돌 즈음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다. 윈스턴 처칠이 처음 제기하고 1950년대 로베르 슈망, 콘라트 아데나워, 장 모네 등이 추진한 유럽합중국의 꿈은 2차대전이 끝난 지 12년 만인 57년 프랑스·서독·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이탈리아 여섯 나라 대표들이 로마조약에 서명해 유럽 경제공동체를 출범시킴으로써 첫 열매를 맺었고, 이제는 동서유럽을 아우르는 25개국을 포괄하는 초국적 통합체가 됐다. 유럽연합은 지난 50년 동안 유럽인들이 관용과 연대 정신으로 이룬 이런 성과를 자축하는 각종 행사를 연다. 행사의 정점은 유럽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줄 베를린 선언인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럽연합 의장국 수반 자격으로 이 선언을 주도한다.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를 겪었던 동북아에선 똑같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나라 사이 반목과 갈등이 온존한다. 그리고 독일이 유럽 통합의 견인차가 된 반면, 일본은 이 지역에서 반목과 갈등의 원인이 돼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단적인 예가 아베 신조 총리의 군대위안부 발언 소동이다.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두고 사과와 반성 뜻을 담았던 ‘고노 담화’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우익의 압력에 밀려 “관헌이 집에 쳐들어가 연행하는 등의 강제성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며 반성불가라는 자신의 본심을 토로했던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의 쏟아지는 비판 앞에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베가 총리직에 오를 무렵인 지난가을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아베가 뒷심이 없는 정치인이라 이리저리 휘둘릴 것이라며 오늘과 같은 일이 있을 것임을 예측했다. 그러나 아베의 소동은 단순히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역시 국제적 상식에 벗어난 채 자기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일본 우익들에게 휘둘리기에 벌어진 일이다.

역사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이런 행태를 두고 이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 같다”고 지적한다.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해 국제사회에서 걸맞은 대접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후나바시가 지적하듯 관료체제, 미-일 동맹 체제, 복잡한 역사문제 등 일본을 국제적 미성숙 상태에 머물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다. 또 대외 침략 이외의 방식으로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은 경험이 일천한 역사와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 국력에 걸맞은 구실을 하고자 한다면 일본은 스스로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성숙하고 품격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품격은 세세한 사실을 변명하는 대신 스스로의 역사를 양심의 거울에 비춰보고 잘못된 점은 과감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데서 나온다. 그렇게 한다면 어느 누구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대해 나가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반목과 대립의 동북아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협력 시대로 나아가는 주춧돌을 놓을 일본의 콘라트 아데나워를 기대하는 것은 정녕 꿈인가?

권태선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kwonts@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침햇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