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9 17:39
수정 : 2007.03.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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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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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굴곡이 심한 인생역정을 거쳐온 사람이다. 봉투접기부터 시작해 풀빵 장사, 시장 청소부, 인력시장 잡부에 이르기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집이 어려워 이태원·공덕동·효창동 일대 판자촌과 달동네를 전전했고, 고등학교도 가지 못할 뻔했다. 그가 지난 13일 출판기념회에서 내놓은 <어머니>라는 책에는 혹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의 절절한 사연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중학교를 마치고 포항에 주저앉을 운명이었던 그가 피나는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그룹의 2인자,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을 바라보게 됐으니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머리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자신감으로 꽉 차 있을 것이다.
그가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 ‘대한민국 747’에도 자신감은 곳곳에 녹아있다. 매년 7%의 경제성장, 10년 뒤인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와 세계 7대 경제강국. 10년 만에 경제 규모를 두 배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에 도달한다고 가정할 때 내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7%씩 경제성장을 이루면 2017년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9천달러를 넘어선다. 인구가 4840만명으로 변동이 없을 때 얘기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2005년 7875억달러로 세계 12위였던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 1조9천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면 이탈리아(1조7627억달러)를 제치고 프랑스(2조1269억달러)에 이어 세계 7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다른 나라들의 국내총생산은 2005년 수준에 머문다는 조건이다. 이탈리아가 1%씩만 성장해도 2017년 국내총생산은 2조달러에 육박해 우리는 세계 7위로 올라설 수 없다. 10년 동안 한국은 한번도 쉬지 않고 매년 7%의 경제성장을 계속하고, 다른 나라들은 매년 1% 미만의 경제성장에 그친다는 가정 위에서만 가능한 논리다.
이 전 시장은 경제 대통령을 자신하고 있다. 틈 날 때마다 “경제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비전 747은 더는 경제 논리가 아니다. 정치적 구호일 뿐이다. 혹시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 근거없는 낙관론은 아닌지 의심된다. 자기가 입지전적인 신화를 이룩했다고 해서 나라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이뤄냈기에, 경제 전문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어쩐지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비전 747의 핵심은 연간 7% 경제성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 전에 써먹었던 7% 성장론의 재판이다. 여성의 사회참여 활성화를 위한 발상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노동시간 감소로 하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여성의 사회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1970년대식 성장 지상주의다. 고도성장을 이루면 일자리가 늘고 소득과 소비가 늘어 분배와 복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우리 경제는 5% 성장했지만 취업자는 1% 느는 데 그쳤다. 지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20대 취업자는 21년, 30대 취업자는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 추가 성장이 저출산·고령화·청년실업·사회양극화 등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라 개발독재 시대로의 회귀일 뿐이다. 국민을 현혹하는 숫자가 아니라 사회 통합과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미래 비전을 보고 싶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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