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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장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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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과거사에 발목 잡힌 일본이 동북아 안정 및 평화 정착 구도에서 고립되고 있다. 2·13 6자 회담 합의 이후 북핵 폐기 협상이 본격화했지만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만 집착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한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은 일본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일본의 외교적 고립은 대미관계에서도 표면화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납치 문제를 북핵 문제와 함께 6자 회담의 주요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미국의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납치 문제는 북-일 간의 문제라며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일본의 좌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협의를 시작한다는 조항을 합의에서 빼려고 총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본은 이런 미국의 냉담한 태도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커트 캠벨 신미국전략센터(CNAS) 소장은 “일본이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외교적 고립은 아베 총리가 추구하는 대북 강경 노선이 자초한 결과이기도 하다. 납치자 문제에 대한 강경대응 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운신의 폭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극우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북 강경 노선을 통해 동아시아의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일본의 핵무장과 군비확장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데 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존속시켜 재무장의 명분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일본의 재무장 목표는 궁극적으로 숙명적 라이벌인 중국이다. 중국과의 전면 대결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우니까 북한 위협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대북 강경 노선은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주도에 대한 반발의 성격도 있다. 일본은 미·중의 동아시아 주도가 결국 중국의 동아시아 헤게모니 장악으로 귀착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에 대항해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를 묶는 협조체제의 구축으로 맞서고자 한다. 특히 일본은 미국-일본-인도의 군사협력 체제를 통한 중국 봉쇄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이런 구상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동맹 노선의 전통이 강한 인도가 일본의 구상에 얼마나 호응할지도 미지수다. 일본의 대북 강경 전략은 미국의 부시 정권이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쪽으로 급선회하면서 심각한 국면에 직면했다. 미국은 일본의 참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7월까지는 일본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와 북-미 수교협상 착수 등 미국의 스케줄에 따라 북핵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계속해서 대북 강경 기조를 고수할 경우 미-일 관계의 균열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핵 문제가 6자 회담을 통해 해결의 발판을 가까스로 마련한 상황에서 일본의 고립화 노선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일 관계가 납치자 문제를 놓고 계속 대립할 경우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정착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동북아 안정 노력에 일본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한국의 대일 외교적 이니셔티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워싱턴/장정수 논설위원jsjang05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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