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02 18:02
수정 : 2007.04.02 18:02
|
김종철/논설위원
|
아침햇발
4년 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보수세력은 그를 “나이는 50대 후반이지만 의식은 여전히 386 운동권”이라며 매우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민주의식과 정의감이 여전히 충만한’ 대통령으로 여겨 크게 반겼다. 특히 갈수록 삶이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새 대통령이 지녔다는 ‘운동권 의식’은 걱정거리가 아니라 미래를 기대해도 좋은 근거였다. 고졸 출신의 인권변호사 경력과 노동자 농민을 위한 의정활동 등 삶의 궤적으로 볼 때 그가 기득권을 옹호하기보다는 개혁을 추진하고, 강자보다는 약자의 편, 시장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정치 부문에서는 과거 과도하게 힘을 행사했던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권위주의를 몰아내는 등 노 정권은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권력형 비리에서는 현재까지는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깨끗했다. 민주당 분당 등 정치적으로 좌충우돌할 때 일부에서는 정치적 배신행위라고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지만, 다수 지지자들은 지역주의 타파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거니 하고 이해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그는 거의 완벽하게 지지자들의 여망을 저버렸다. ‘좌파 신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입으로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의 조화와 실리를 추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신자유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서민들이 살맛나는 사회’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를 훨씬 많이 외쳤다. 그 때문에 85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화가 아니라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도 위협당하는 처지에 놓였으며, 국민 보건을 담당하는 의료 부문조차 선진화라는 명목 아래 영리 사업화가 추진되고 있다. 중산층 감소와 이에 따른 사회 양극화 심화는 노 정권 4년 동안에 더욱 늘어났다. 사회 정의나 통합보다는 시장 논리를 중시하는 정부에서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다.
특히 지난해 1월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느닷없이 들고 나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은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취임사)라는 16대 대통령 노무현에게 맡겨진 시대적 역사적 과제와는 정반대로 가는 길이다. 그는 “그것을 통해 물건을 더 파는 것보다는 제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한다”(2006.5. 두바이 동포간담회)며 한-미 에프티에이가 ‘지도자로서의 고독한 결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확신이 클수록 한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절망감도 깊어갔다. 지지자들은 길바닥으로 뛰쳐나갔다. 상위 1%의 소득이 최하위 40%의 소득보다 더 많고, 수천만명이 의료보험도 없이 냉정한 시장에 내팽개쳐지는 미국식 시장주의 모델 배우기나 박정희식 성장주의자의 부활을 그에게 바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는 사회”(취임사)에 다가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마침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타결되고, 탄핵 등 고비마다 ‘바보 노무현’을 지켰던 기존 지지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새 지지세력을 얻었다. 4년 내내 ‘노무현 죽이기’로 일관했던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등이다. 당장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면 손해보다는 남는 장사로 보인다. 내용상으로도 꿈꾸던 대연정의 완성이다. 어떤 게 옳은지를 떠나 정치인 노무현을 정의파 운동권에서 시장파 ‘운동권’으로 대변신한 인물로 역사가 기록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김종철/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